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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봉주에 멈춰 선 한국 마라톤

2시간 7분 20초의 신기록 벽은 언제 깨질 것인가

2023-03-21 11:34

2001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서 우승을 차지하던 이봉주 모습. [대한체육회 제공]
2001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서 우승을 차지하던 이봉주 모습. [대한체육회 제공]
우리 국민에게 마라톤은 스포츠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자긍심을 드높이는 역할을 해왔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은 그 어떤 반칙이나 편법이 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우리 국민성과 각별하다. 온몸으로 전 과정을 빈틈없이 관통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어떤 물리적인 공간, 시간적인 여백도 개입할 수 없다.

한국 남자 마라톤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민족의 설움을 안고 달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손기정 선생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제패했고 남승룡(동메달) 이후 서윤복(1947년)・함기용(1950년) 선생이 가장 유명한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인 보스턴마라톤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이어 ‘몬주익 영웅’ 황영조(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와 이봉주(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가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 마라톤의 성가를 드높였다.

세계 마라톤은 케냐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주도하는 스피드 경쟁으로 엄청난 기록 단축을 실현해가고 있다. 2022년 9월 25일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39 케냐)는 2시간 01분 09초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 2018년 자신이 같은 대회에서 수립한 기록인 2시간 01분 39초를 30초나 앞당김으로써 ‘서브 2’ (2시간 이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 꿈의 실현이 다가왔다.

하지만 한국 마라톤은 지난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세운 한국 신기록 2시간 7분 20초의 벽을 23년째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전국체전에 머물지 않는 경기력 향상정책 절실

지난해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다시 열린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대회가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3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으로 골인하는 코스에서 펼쳐졌다.

이날 대회는 다가오는 9월 개최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대회라서 엘리트 선수들의 좋은 기록이 어느 때 보다도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국내 남자부에서 미래 기대주로 떠오른 박민호(24·코오롱)가 2시간 10분 13초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는데 그쳤다.

그러나 여자부에서는 정다은(26·k-water)이 2시간 28분 32초로 자신의 기록을 4분 가까이 단축하며, 1위로 골인해 기염을 토하며 여자 마라톤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날 큰 기대를 모았던 케냐 귀화선수 오주한(35·청양군청) 은 14km 지점에서 중도 포기해 실망을 안겨줬다.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어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이 유력한 가운데 두 남녀 박민호와 정다은이 한국 마라톤의 새로운 희망을 짊어지게 됐다.

한국 마라톤의 앞날을 생각할 때 그동안의 전국체전과 도민체전의 순위경쟁에 매달리는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사고의 전환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순위를 다투는 선수가 아닌 기록을 다투는 선수로, 국내용 선수가 아닌 국제용 선수로 길러내는 혁신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육상계와 체육계의 한결같은 염원이다.

과학적인 전문성을 더 길러야 하고, 국제적인 대회에 출전해 많은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첫번째 과제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케냐나 일본에 전지훈련을 보내 경기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그 다음의 숙제다. 물론 여기에는 경쟁 분위기 조성이 있어야 하고, 꿈나무 발굴 차원의 역전마라톤 등을 다시 부활해서 인기 있는 마라톤경기로 부각시켜 제2의 황영조, 이봉주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선수들을 길러내야 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뒤처졌던 일본 마라톤은 근래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 매년 1월 2일~3일에 어김없이 열리는 하코네 역전마라톤은 일본 TV 생중계 시청률 1위를 달릴 만큼 국민이 즐기는 스포츠 축제다. 이런 대회를 통해 일본 마라톤의 유망한 선수 발굴과 저변확대 그리고 활성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일본 남자 마라톤 신기록은 스즈키 겐고(27·후지쓰) 선수가 2021년 2월 28일 비와코 마이니치 마라톤에서 2시간 04분 56초의 기록을 세우며 아시아 2위에 랭크됐다. 또한 2시간 5분대와 7분대 선수도 다수 있고, 2시간 10분 이내의 선수도 40여 명이나 된다. 최근 2023년 3월 5일 도쿄마라톤에서도 야마시타 카즈키(미쓰비시 중공업) 선수 등 2명의 선수가 2시간 5분대 오사코 스구르(나이키) 선수가 2시간 6분대의 기록으로 상위 입상권에 들며 저력을 과시했다.

순위 경쟁 아닌 기록 경쟁으로 나가야

이처럼 아프리카 케냐나 에티오피아 출신 선수들이 세계 마라톤을 주름잡고 있지만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무시할 수 없는 마라톤이 강한 나라다. 일본은 지난 80년대 전성기 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 세코 토시히코(198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가 일본 마라톤의 부흥을 이끌어가고 있다.

세계 수준의 속도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 마라톤은 2023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올림픽 도전을 앞두고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도 마라톤을 국민 스포츠 축제로 만들어 내는 과감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의 힘은 대단하다. 프로야구 경기장의 많은 관중처럼 42.195km를 달리는 전 코스에 시민들의 열렬한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달릴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한다.

과연 우리의 자랑스런 ‘마라톤 영웅’ 이봉주가 보유한 2시간 7분 20초의 한국 신기록은 언제쯤 깨어질 것인가.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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