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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31] 바둑에서 왜 ‘완생(完生)’이라고 말할까)

2026-07-02 06:54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31]  바둑에서 왜 ‘완생(完生)’이라고 말할까)
바둑 용어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나 가능성을 상징한다는 ‘미생(未生)’과 대비되는 말이 있다. 불확실성을 넘어 생존이 확정된 상태를 의미하는 ‘완생(完生)’이라는 말이다. (본 코너 1830회 ‘바둑에서 왜 '미생(未生)'이라는 말을 쓰는가’ 참조)

한자어 완생(完生)은 ‘완전할 완(完)’과 ‘날 생(生)’의 합성어로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완전히 살아 있음', '온전하게 생존한 상태'를 뜻한다. 완생은 동아시아 바둑 문화에서 발전한 한자어이다. 중국에서는 ‘완생(完生, wánshēng)’이라는 표현이 쓰였고, 일본에서는 같은 개념을 완전한 삶이라는 뜻의 완전한 생존보다는 주로 '살아 있다'는 의미의 ‘活き(いき, 이키)’ 또는 ‘生き石(이키이시)’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한자어 완생이 정착해 바둑 교재와 해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완생(完生)이라는 단어가 검색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적어도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문헌어는 아니었으며 바둑 용어로서의 완생은 개화기 이후 정착한 말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 확인되는 비교적 이른 용례 가운데 하나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수록된 동아일보 1937년 7월 29일 자 바둑 기사 ‘호리지차천리류(毫釐之差千里謬)’이다. 이 기사에는 ‘선수(先手)로 일목(一目)을 득하면 지금 수곤(受困)한 상우백(上隅白)의 완생(完生)에 필요조건 아닌가’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는 당시 이미 완생이 바둑계에서 통용되는 전문 용어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적 사례이다.

다만 이러한 자료만으로 완생의 탄생 시기를 1930년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1937년 신문에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이전부터 기사 필자와 독자들이 이해할 정도로 용어가 정착되어 있었음을 시사할 뿐이다. 따라서 완생은 개화기 이후 근대 바둑의 보급 과정, 특히 일본 바둑 이론과 한자 용어의 영향을 받으며 20세기 초반 무렵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신중한 해석이다.

바둑을 배우다 보면 가장 먼저 접하는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완생이다. 상대가 아무리 공격해도 잡을 수 없는 상태, 두 개 이상의 확실한 집을 확보하면 더 이상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둑에서는 이 완생을 이루는 순간 비로소 그 돌들은 존재를 인정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바둑의 대부분은 완생을 향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초반에는 세력을 넓히고, 중반에는 치열한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며, 종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살아남은 돌들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 처음부터 완생인 돌은 없다. 끊임없는 선택과 인내, 그리고 적절한 타협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한 생명을 얻는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경쟁하고, 때로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 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한 성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이루었는가'에 있다는 점이다.

완생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바둑의 고수들은 무리하게 집을 늘리기보다 먼저 살아 있는 돌을 만든다. 살아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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