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77] 장기에서 왜 ‘상(象)’이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81706582004923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장기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놀이판 위에 옮겨놓은 것이다. 왕에 해당하는 장(將)을 중심으로 차, 마, 포, 상, 사, 졸 같은 여러 병종이 배치된다. 대한장기협회가 정리한 장기 용어에서도 상은 ‘象’ 자를 새긴 기물로, 한쪽에 두 개씩 놓이며 독특한 행마법을 가진 기물로 설명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왜 하필 코끼리인가 하는 점이다. (본 코너 1875회 ‘장기에서 왜 ‘차(車)’라고 부를까‘, 1876회 ’장기에서 왜 ‘마(馬)’라고 부를까‘ 참조)
고대 중국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의 이름에 그치지 않았다. 고대 동아시아의 전쟁에서 코끼리는 낯선 상상이 아니었다. 특히 인도와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코끼리를 전쟁에 활용한 기록이 있었고, 코끼리를 탄 병사나 코끼리 부대는 강력한 군사력을 상징했다. 거대한 몸집과 힘을 가진 코끼리가 전투에서 일종의 전차처럼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기에서 상은 단순히 ‘코끼리를 흉내 낸 말’이라기보다 고대의 코끼리 전투부대를 상징하는 기물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고대 인도의 차투랑가가 코끼리·말·전차·보병이라는 네 병종을 군대의 구성으로 삼았고, 이 전통이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의 상기와 한국 장기의 ‘상’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대한장기협회도 장기의 기원을 차투랑가와 연결하면서 상을 전투용 코끼리로 설명한다.
그런데 한국 장기의 상을 실제 코끼리의 움직임과 연결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보인다.
상은 한 번에 멀리 움직인다. 앞뒤로 세 칸, 좌우로 두 칸 떨어진 지점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행마를 한다. 그래서 장기에서는 마와 상의 움직임을 막는 ‘멱’이 매우 중요하다. 대한장기협회 자료에서도 멱을 마나 상이 다닐 수 있는 길목으로 설명한다.
물론 실제 코끼리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장기의 행마는 동물의 실제 걸음걸이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추상적인 공간에서 각 병종의 역할과 특징을 규칙으로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
상은 마보다 움직임이 크고, 대신 장애물에 민감하다. 마와 상이 서로의 길을 열어주거나 막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 장기에서도 두 기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장기 포진을 설명하는 자료에서도 마와 상이 서로의 위치와 활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장기판의 상은 코끼리이면서 코끼리 그 자체는 아니다. 여기에는 고대의 전쟁이 있고, 그 전쟁을 놀이로 바꾼 사람들의 상상력이 있다. 거대한 코끼리를 전쟁터의 한 병종으로 기억하고, 그것을 한 글자 象에 담고, 다시 작은 나무알 하나로 만들어 장기판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象이라는 글자가 단순히 코끼리만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코끼리의 모습을 본뜬 글자에서 출발한 象은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과 ‘형상’, 그리고 어떤 것을 대신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의미까지 품게 됐다.
그 작은 장기알 하나에는 코끼리라는 동물, 고대의 전쟁, 군사제도, 한자의 역사, 그리고 인간이 전쟁을 놀이로 바꾸어낸 오래된 상상력이 함께 들어 있다. 장기판은 작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세계는 작지 않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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