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24] 바둑에서 왜 '강수(强手)'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62506090209650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흑의 강수에 백이 곤란해졌습니다."
바둑 중계를 보다 보면 해설자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초보자들은 종종 의문을 품는다. 좋은 수라면 그냥 '좋은 수'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강수'라고 부를까하고 말이다. ‘강수(强手)’는 한자로 '강할 강(强)', '손 수(手)'를 쓴다. 직역하면 '강한 손', 즉 '힘 있는 착수'라는 뜻이다. 여기서 ‘수(手)’는 단순히 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둑에서는 돌을 놓는 행위 자체를 뜻하며, 장기·체스 등에서도 한 번의 움직임을 '한 수'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강수는 '힘이 느껴지는 한 수'를 의미한다.
강수라는 말은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자주 보이는 바둑 용어는 수(手), 기세(棋勢), 승부, 국면 등 정도이다. 현재 바둑 용어 상당수는 일본 근대 바둑계를 거쳐 정착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은 체계적인 기보 연구와 해설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강수(強手), ‘묘수(妙手)’, ‘악수(惡手)’, ‘완착(緩着)’ 같은 표현이 정교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본 코너 1821회 ‘왜 바둑에서 ‘묘수(妙手)’라고 말할까‘, 1823회 ’바둑에서 왜 ‘악수(惡手)’라고 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강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8년 9월25일자 ‘유태인(猶太人)의과거(過去)와현재(現在) (일(一))’ 기사는 ‘다시말하면 정조(貞操)라는 것은 상대자(相對者)를 위(爲)한전성(全城)을 복설(復設)하엿다 서력칠십년(西曆七十年)에 분로(奮路)□□국(國)의 강수(强手)에게 예루살레□ 함락(陷落)되엇고 전(全)『팔네스타인』□ 말못되게 황무지(荒無地)로변(變)하고 말은 것이다’라고 전했다. 당시 기사에서의 강수(强手)는 바둑 용어가 아니라 '강한 상대', '강적', '실력자'라는 일반 한자어 의미로 사용된 사례이다.
바둑 기사들이 강수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승부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프로 기사들의 대국을 보면 형세가 불리할 때 단순히 안전하게 두어서는 역전이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강수다. 해설자들이 "강수를 던졌다"고 말할 때는 단순한 기술적 평가만이 아니라 승부사의 결단까지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강수라는 단어는 이미 바둑판을 벗어났다. 정치권에서는 예상 밖의 정책 발표를 두고 강수라고 말한다. 기업이 대규모 인수합병에 나설 때도 강수라고 표현한다. 스포츠 감독이 공격적인 전술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더 이상 바둑을 두지 않아도 강수라는 단어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 단어는 한국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는 바둑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언어까지 형성해 온 문화였음을 보여준다. 강수라는 말 안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동아시아 바둑 문화와 승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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