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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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레저이야기] 두 번 졌는데, 뇌는 왜 또 경기 시간을 검색하는가

- 와신상담(臥薪嘗膽): 패배가 쌓일수록 뇌가 더 선명해지는 이유

2026-03-09 10:04

한국 야구 대표팀 / 사진=연합뉴스
한국 야구 대표팀 / 사진=연합뉴스
3월 7일 토요일 저녁, 오십 년 지기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해서 모이게 된 날인데 한일전이 열렸다.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TV 중계를 보는데 1회초부터 타선이 폭발해 세 점을 앞서가자 모임 장소는 한순간에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7회, 불펜이 무너지며 두 점을 허용한 채 경기는 6대 8로 역전패로 끝났고, 자리도 그렇게 파했다.

다음 날 일요일 낮, 나는 아내와 함께 다시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대만전이었다. 한 점 뒤진 6회에 김도영이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릴 때 그만하면 됐다 싶었는데, 연장 10회 승부치기에서 대만의 스퀴즈 번트 한 방에 결국 4대 5로 패했다. 화면을 껐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9일 호주전 시간을 검색하고 있었다.

이틀 연속 졌다. 이미 8강 진출도 불투명해졌다. 그런데 왜 뇌는 포기하지 않는가.

연속 패배를 경험할 때 뇌에서는 묘한 이중 반응이 일어난다. 먼저 편도체, 즉 '감정의 경보기'가 울리면서 허탈감과 코르티솔이 한꺼번에 몸 안을 채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뇌의 다른 회로가 슬며시 불을 켠다. 도파민은 성취가 이루어진 뒤에 분비되는 게 아니라 성취를 기대하는 순간에 가장 강하게 나온다.

9일 호주전, 아직 남아 있는 그 가능성 하나가 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절망보다 가능성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미러뉴런, 즉 '공감의 거울'도 이 감정에 깊이 개입한다. 남의 동작을 볼 때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처럼 반응하는 이 세포 덕분에, 연장 10회 홈으로 쇄도하다 태그아웃된 장면은 많은 시청자의 뇌 안에서 '자신의 아웃'으로 처리된다. 그래서 그토록 아프다. 패배의 고통에 공감하는 뇌이기에, 다음 경기의 환희에도 공감하기 위해 다시 화면 앞에 앉는 것이다.


대만전에서 한 가지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선발로 나선 류현진은 2010년 이후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도쿄돔 마운드에 올랐다. 야구 팬이라면 그 숫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안다. 3회를 1실점으로 막고 내려올 때 그의 뒷모습에서 읽히는 것이 있었는데, 좌절에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6회, 1점 뒤진 상황에서 김도영이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리자 경기장이 뒤집혔다.

그 순간만큼은 전전두엽, 즉 '판단의 사령탑'이 잠시 작동을 멈추고 변연계의 불꽃이 온몸으로 번진다.

이성이 잠들고 감동만 남는 그 찰나, 그것이 스포츠가 인간에게 주는 가장 솔직한 선물이다. 하지만 야구는 잔인하리만치 9이닝을, 아니 10이닝 끝까지 버텼고, 스퀴즈 번트 하나에 모든 것이 정지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 패한 뒤 장작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치욕을 새겼다고 한다. 쓴맛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쓴 것을 삼킨 것이다.

신경과학은 그 선택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역경을 버티는 경험은 전두엽의 감정 조절 회로를 재배선하고 뇌의 찰흙을 더 단단하게 빚어낸다. 이틀간의 패배가 남긴 이 쓴맛을 삼킬 수 있다면, 우리의 뇌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오늘 저녁 호주전 결과에 따라 대표팀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도쿄돔의 이 사흘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뇌는 결과보다 드라마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천이 끝내 오나라를 무너뜨렸듯, 우리도 그 쓴맛을 갚을 날이 반드시 온다. 당신의 뇌는 그날을 이미 예약해 두었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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