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39] 바둑에서 왜 '공배(空排)'라는 말을 사용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1006485505772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바둑에서 공배라는 말을 쓰지만, 정작 왜 ‘空排’라고 말하는지 아무도 확실히 설명하지 못한다. 대한바둑협회 경기규칙은 단순히 '흑과 백의 집이 생겨날 수 없는 자리를 공배라고 한다'
라고만 정의할 뿐, 어원은 설명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공배(空排)'를 검색하면 이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20년 이후의 신문을 검색해 보아도 '공배'라는 표현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조선시대 문헌이나 근현대 초기 언론에서 널리 쓰이던 용어는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이 말은 근래에 한국 바둑계에서 정착한 전문용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배는 뜻글자라기보다 음을 맞춘 표기일 가능성이 크다. 한자 ‘排’는 원래 ‘밀다’, ‘늘어놓다’, ‘배제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본 코너 454회 ‘왜 ‘Volleyball’을 '배구(排球)‘라고 말할까‘ 참조)
하지만 바둑 용어에서 ‘빈 배치’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다. 중국의 일반 한자 용법에서도 空排가 '중립점'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 예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어학자들과 바둑 연구자들은 공배라는 말을 먼저 사용했고, 나중에 음을 맞추어 空排라는 한자를 붙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보면 더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중립점을 보통 ‘公气(공기)’, ‘单官(단관)’, ‘官子(관자)’등으로 표현하며, 空排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다. 일본 바둑에서도 ‘ダメ(dame)’, ‘駄目’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공배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즉 공배는 한국 바둑에서 정착한 독자적인 용어에 가깝다.
예전 바둑에서는 대국이 끝난 뒤에도 판 위에 남아 있는 빈 점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 예의였다. 집과 집 사이에 남겨진 중립지대를 그대로 두면 판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이익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자리들을 차례로 메우며 대국을 마감했고, 이러한 자리를 특별히 공배라고 불렀다.
또한 공배는 규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집 계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해관계가 없는 점과, 아직 승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만약 어떤 빈자리가 실제로는 선수나 패, 또는 수상전과 연결된다면 그것은 공배가 아니다. 따라서 공배라는 용어는 단순히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전략적 가치가 없는 중립점’이라는 판단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공배를 둘러싼 문화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배를 끝까지 모두 메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대의 프로 대국에서는 승부가 확정되면 굳이 모든 공배를 메우지 않고 계가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본 코너 1837회 ‘바둑에서 왜 '계가(計家)'라고 말할까’ 참조)
컴퓨터 바둑이나 온라인 바둑에서는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처리가 되거나, 공배를 모두 메워야 종료되는 방식도 존재한다. 용어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실제 운용 방식은 시대와 규칙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온 셈이다.
결국 공배라는 말은 단순한 빈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승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이며, 동시에 한 판의 대국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바둑에는 수많은 전문 용어가 있지만, 공배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자리'를 가리키면서도 오히려 바둑의 질서와 완결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말도 드물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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