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6회 세계인 장기대회에서 각 국가를 대표한 선수들이 대국을 벌이고 모습 [대한장기연맹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81307193608705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장기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맞붙었던 중국의 옛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놀이인 만큼, 한쪽 진영의 왕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장기의 양쪽 진영은 흔히 ‘초’와 ‘한’이라고 부른다. 초(楚)는 항우가 이끌었던 초나라를, 한(漢)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가리킨다. 장기의 원형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 두 세력이 대결하는 이야기가 놀이판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장기판은 단순히 말의 움직임을 겨루는 공간이 아니라, 초와 한이 패권을 다투던 역사적 장면을 축소해 놓은 무대가 된 셈이다. (본 코너 1871회 ‘왜 '장기(將棋)'라고 말할까’ 참조)
특히 한이라는 이름은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나라는 진나라가 무너진 뒤 유방이 세운 왕조로,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 왕조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가 오늘날 중국인을 가리켜 ‘한족’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한나라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한’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왕조의 명칭을 넘어 중국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모르면 장기의 ‘한’은 그저 왕을 부르는 독특한 이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장기판의 모습이 조금 달라진다. 궁 안에 있는 ‘한’은 단순한 장기의 왕이 아니라,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반대편의 ‘초’ 역시 항우의 초나라를 상징한다.
중국의 장기인 샹치(象棋)에서는 같은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면서도 말의 명칭과 글자가 조금씩 다르다. 한국 장기는 중국 장기와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지만, 오랜 시간 한국의 놀이문화 속에서 독자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장기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말이 ‘한’이라는 사실이다. 장기에서는 상대의 ‘한’ 또는 ‘초’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장군’을 선언하고 결국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역사 속 초한전쟁에서 유방이 항우를 꺾고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던 것처럼, 장기판에서도 ‘한’과 ‘초’는 끝까지 서로를 압박한다.
그래서 장기판을 들여다보면 역사와 놀이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포와 차와 마가 움직이고, 병과 졸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그 중심에는 ‘한’과 ‘초’가 버티고 있다. 수천 년 전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싸웠던 두 세력이 작은 나무판 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장기는 말을 움직이는 놀이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작은 ‘漢’ 한 글자가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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