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63] 바둑에서 왜 ‘호구(虎口)’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80307043908343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호구(虎口)를 검색하면 국역 13회, 원문 43회가 나온다. 이는 호구가 바둑 용어에만 머물지 않고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실제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근거이다.
이 용법은 근대 언론에도 이어졌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1년 5월 26일자 ‘일년간을 회고하고’에는 ‘악독한 호구(虎口)를 능히 벗어나고 간난신고와 만고풍상을 다 겪어 오늘이 있게 되었다’는 문장이 실려 있다. 여기서 호구는 오늘날의 속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다. 호랑이의 입에서 살아 나왔다는 뜻, 곧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혹독한 시련을 이겨냈다는 비유다. 이처럼 호구는 본래 극한의 위험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바둑에서 호구는 집을 안정시키고, 약한 돌을 연결하며, 상대의 침입을 막는 데 자주 등장하는 기본 형태다. 초보자는 물론 정상급 프로 기사들도 끊임없이 활용하는 탄탄한 수법이다. 바둑에서는 결코 어리석음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과 실리를 상징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말이 오늘날의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언어는 본래의 뜻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 호구 역시 바둑판을 떠나면서 변화의 길을 걸었다.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쉽게 당하는 사람'이라는 속어로 자리 잡았고, 인터넷 문화와 대중매체를 거치며 본래의 의미보다 새로운 의미가 훨씬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제는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호구라는 단어는 알지만, 정작 바둑 용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변화는 언어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원래의 의미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바둑의 호구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위한 준비이며, 공격보다 먼저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만드는 지혜다. 화려한 한 방보다 흔들리지 않는 균형을 선택하는 모양인 셈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배려하는 사람,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 원칙을 지키는 사람에게도 쉽게 호구라는 낙인을 찍곤 한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만 좇지 않는 선택이 반드시 어리석음은 아니다. 바둑에서도 가장 좋은 수는 눈앞의 이익보다 전체 판세를 생각하는 수일 때가 많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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