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원(院)'이라는 글자가 흥미롭다. 우리 주변에는 병원(病院), 학원(學院), 서원(書院)처럼 특정한 목적을 가진 공간을 뜻하는 이름이 많다.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바둑판을 펼쳐 놓은 장소가 아니라 바둑을 배우고 연구하며 실력을 겨루고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 코너 560회 ‘원(院), 관(館), 도장(道場)은 어떻게 다를까’ 참조)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원이라는 단어가 검색되지 않는다. 이는 조선시대에 바둑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원이라는 명칭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기원은 근대 일본의 '일본기원'에서 비롯되어 한국에 도입된 용어로, 조선시대의 언어가 아니라 근대 바둑 제도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때 기원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7년 3월 21일 자 '지상고문의 질의요령'에는 독자가 "귀사 주최로 기원(棋院)의 장소가 미지하오니 하교하여 주시압소서"라고 문의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는 당시 독자와 신문사 모두 '기원'이라는 말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정도로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오늘날에는 동네 바둑교실이나 바둑카페가 많아졌지만, 한때 기원은 지역 문화의 사랑방이었다. 퇴직한 어르신들이 한 수를 겨루고, 젊은 기사 지망생들이 꿈을 키우며, 이웃들이 바둑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던 곳이었다. 승패를 다투는 공간인 동시에 사람을 이어 주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이 바둑의 보급과 발전을 이끌고 있으며, 기원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 기원은 단순한 대국장이 아니라 바둑 문화의 중심지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바둑을 두는 장소를 기원이라 부르는 말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바둑 문화와 공동체의 정신을 담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