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62] 왜 ‘훈수(訓手)’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80206411307701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도 훈수라는 말이 등장한다. 명종실록2권, 명종 즉위년 1545년 9월 14일 기사에 ‘김명윤(金明胤)이 처음 발설하였을 적에 심통원(沈通源)은 ‘상을 당하여 슬퍼한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라, 윤임 등이 그를 시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서 특이한 행동을 하게 한 것으로 이는 바둑을 둘 적에 훈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적었다. 이 기록은 '훈수'라는 말이 적어도 16세기 중반 조선에서도 이미 바둑 용어로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해방 직후부터 훈수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1949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 「삼의원 체포사건(2)」 기사에는 "마치 기박(棋博)의 뒷전에 앉아 보는 것처럼 훈수 들고 싶은 초조한 민정(民情)"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바둑을 구경하며 옆에서 수를 일러주고 싶은 마음을 당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훈수는 바둑판을 넘어 정치와 사회를 설명하는 비유어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는 해방 이후 언론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그 이전 신문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둑에서 훈수는 두는 때와 자리가 있다. 대국 중인 두 사람에게 "저기를 두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승부를 망치는 일이다. 바둑은 오롯이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한 수를 선택하는 게임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대국 중의 훈수는 상대에 대한 예의도, 자신에 대한 존중도 아니다. 그래서 공식 대국에서는 물론이고 동호인들의 친선 대국에서도 훈수는 금기다.
반면 대국이 끝난 뒤의 훈수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승패가 결정된 후 두 기사는 바둑판 앞에 다시 앉아 복기를 한다. "이 장면에서는 이쪽이 더 좋았습니다", "여기서는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이 과정에서 패자는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고, 승자는 더 나은 길이 있었음을 배운다. 승부는 끝났지만 공부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훈수가 가장 쉬운 순간은 바둑이 끝난 뒤가 아니라, 이미 결과를 알고 난 뒤라는 사실이다. 결과를 본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대국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수많은 변화와 함정을 계산해야 한다. 바둑을 조금만 깊이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한 수를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함부로 훈수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를 알고 나면 누구나 "그때 그렇게 했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에는 누구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쉬운 훈수가 아니라, 함께 돌아보고 배우려는 태도다.
바둑은 한 수를 두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말해야 하는지,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다. 어쩌면 가장 품격 있는 훈수는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질문을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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