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름에서 잡치기는 타이밍과 상체 힘, 샅바 활용이 중요한 기술이라 특정 선수 한 명의 ‘전매특허’라기보다는, 기본기와 응용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상황에 따라 자주 쓰던 기술이다.
잡치기의 어원을 풀어보면 구조는 단순하다. ‘잡다’와 ‘치다’의 결합어이다. 순간적인 힘의 전달과 방향 전환을 통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뜻한다. 잡치기란 ‘붙잡은 상태에서 타이밍을 살려 쳐 넘긴다’는 의미를 압축한 말이다.‘잡다’는 씨름에서 출발점이다.
잡치기라는 말이 정확히 언제부터 쓰였는지 특정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몇 가지 흐름으로는 짐작할 수 있다.우선 씨름 기술 이름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구전으로 전해지며 굳어진 말들입니다. 잡치기처럼 동작을 그대로 설명하는 순우리말 합성어는 근대 이후 누군가가 만든 신조어라기보다, 전통 씨름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헌 기준으로 보면, 씨름이 글로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 일제강점기~해방 이후이다. 대한씨름협회가 정비된 이후 기술 이름들이 기록되면서 잡치기 같은 용어도 이미 쓰이고 있던 말을 정리해 적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접치기라는 말이 흥미로운 것은 일상어에서의 ‘잡치다’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갖는다는 점이다. 일상에서는 일을 망치거나 그르친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씨름판에서는 오히려 정확성과 완결성을 요구하는 기술 이름이 된다. 같은 어근이 전혀 다른 가치로 전환되는 셈이다. 이는 언어가 맥락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의미를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씨름 기술용어들은 대부분 동작의 핵심을 풀어서 한 말이다. ‘들배지기’ 처럼 복잡한 이론이나 외래어 없이, 몸의 움직임을 우리말 동사 등으로 풀어낸다. 그 안에는 기술을 설명하려는 의도뿐 아니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해되고 전달되어야 했던 실용성이 담겨 있다. (본 코너 1762회 ‘씨름에서 왜 '들배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잡치기는 특히 그 실용성이 두드러진다. 상대를 완전히 들어 올리거나 크게 회전시키지 않아도, 중심이 흐트러지는 찰나를 포착해 승부를 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기술은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손의 위치, 허리의 각도, 발의 버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치느냐’가 중요하다. 이름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감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결국 잡치기라는 말은 씨름이라는 경기의 본질을 축약한 언어라 할 수 있다. 붙잡고, 버티고,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뜨린다. 이 세 단계가 한 단어 안에 들어 있다. 투박하지만 정확한 이 표현은, 씨름이 지닌 힘과 기술, 그리고 순간의 미학을 동시에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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