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강호동의 들배지기는 전형적인 기술형 들배지기라기보다 힘과 스피드가 결합된 파괴형 들배지기였다. 많은 선수들이 중심을 무너뜨린 뒤 들어 올리는 반면, 그는 상대가 버티는 상태에서도 그대로 들어 올려버리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그래서 기사에서 ‘무적’이라는 표현까지 붙은 것이다.
또 하나는 시대적 배경이다. 1990년대 초반은 씨름이 대중적 전성기를 맞던 시기로, 천하장사 씨름대회 우승자의 스타일이 곧 ‘최강의 씨름’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있던 강호동이 3연패를 달성하면서, 그의 들배지기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최강자의 상징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들배지기는 원래 기술적인 균형 붕괴의 기술이지만, 강호동에 이르러서는 “들어 올릴 수 있으면 끝난다”는 압도적 지배의 기술로 재해석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씨름 팬들 사이에서는 “들배지기 하면 누구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강호동이 언급되는 배경이 바로 이런 당대 기록들에 있다.
들배지기의 어원을 보면, 말 그대로 동작을 설명하는 순우리말의 결합이다. ‘들-’은 ‘들다’에서 온 말로, 상대를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배’는 사람의 배(복부), 즉 상대의 중심 부위이다. ‘-지기’는 씨름 기술 이름에 자주 붙는 접미 요소로,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걸거나 넘기는 동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들배지기는 상대의 배 쪽을 들어 올려서 넘기는 기술이라는 뜻이 된다. 실제 동작도 상대를 허리나 배 부근에서 들어 올린 뒤 중심을 무너뜨려 뒤로 넘기는 형태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1970년대부터 들배지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75년 12월25일자 ‘보람 75 (9) 18歲(세)에 天下壯士(천하장사)된 洪顯旭(홍현욱)군’ 기사는 ‘백전노장 金成律(김성율) 장사의 샅바를 움켜쥔 18세 홍안소년 洪顯旭(홍현욱). 여드름 듣기 시작한 얼굴에선 구슬땀이 솟는다. 이 한판이 한국씨름의 패권을 가름하는 것이다. 무적(無敵) 챔피언 金(김) 장사가 첫판은 어처구니없이 洪(홍)군의 들배지기에 빼앗기긴했지만 그러나 역시 만만치않다. 10년 아성을 지켜온 金(김)장사인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미 1970~80년대에 이미 들배지기라는 말이 씨름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들배지기는 특정 시점에 ‘만들어진 말’이라기보다, 오랜 현장 용어가 근대 스포츠화 과정에서 공식 용어로 굳어진 사례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들배지기는 씨름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상대를 들어 올리는 순간, 두 선수의 몸은 잠시 공중에서 균형을 겨룬다. 그리고 한쪽이 무너지는 그 짧은 찰나, 승부는 결정된다. 이 한 장면에는 긴장, 역전, 그리고 완결이 모두 담겨 있다.
들배지기는 힘이 아니라 ‘타이밍과 중심 이동’으로 완성되는 기술이다. 실제로 현대 연구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들배지기 수행 시 샅바를 잡는 위치와 자세에 따라 상지와 등 근육의 활성도가 크게 달라지며, 효율적인 힘 전달과 안정성이 기술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분석이 있다. 들배지기는 단순히 들어 올리는 힘이 아니라, 몸 전체의 협응과 균형 감각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것이다.
이 기술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전통성과 진화’의 공존이다. 과거 모래판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동작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과학적 분석과 훈련을 통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발의 압력, 중심 이동, 근육 사용까지 세밀하게 연구되며, 들배지기는 이제 감각의 영역을 넘어 데이터로도 설명되는 기술이 됐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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