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bero는 라틴어 ‘liber’에서 나왔다. liber은 노예(ser편)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법적·사회적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민을 가리켰다. 단순히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특정 의무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리베로라는 이름에는 이미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배구에서 리베로는 공격과 블로킹 의무에서 제외된다. 대신 수비와 리시브에 전념한다. 공격을 못 하게 한 것이 아니라, 공격으로부터 해방시킨 셈이다. 이 자유는 무제한 교체라는 규칙으로 구체화된다. 로테이션의 족쇄를 풀어준 포지션, 그것이 리베로다. 공격 일변도의 경기 흐름을 바꾸고 랠리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1990년대 말 도입됐다.
흥미롭게도 같은 어원은 축구에서도 쓰였다. 이탈리아 축구의 리베로는 수비라인 뒤에서 자유롭게 커버하는 스위퍼였다. 특정 마크맨에 묶이지 않고, 공간과 위험에 반응하는 역할이다. 배구와 축구 모두에서 리베로는 규칙의 예외로 설계된 자유인이다. (본 코너 471회 ‘왜 리베로(Libero)라고 말할까’ 참조)
북한 배구에선 리베로를 ‘자유방어수’라고 부른다. 이 말은 한자어 ‘자유(自由)’, ‘방어(防禦)’, ‘수(手‘)’ 세 글자의 합성어이다. 자유는 교체와 위치 운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점을, 방어는 수비 전문 선수라는 본질을 나타낸다. ‘수’는 선수, 담당자라는 뜻이다. 자유방어수는 자유롭게 투입되는 수비 전문 선수라는 의미인 것이다.
‘자유’가 강조된 이유는 특별하다. 북한에서 ‘자유’는 흔히 정치적 의미로 쓰이지만, 스포츠 용어에서는 규칙상 허용된 자유를 뜻한다. 리베로는 특정 로테이션에 묶이지 않고, 후위에서 언제든 교체 투입 가능하고 이 특징이 기존 선수들과 달라 ‘자유’가 핵심 개념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주목할 점은 ‘수’라는 표현이다. 북한 스포츠 용어에서 ‘수’는 단순한 손이 아니라 역할을 맡은 주체를 뜻한다. 공격수, 방어수라는 구분은 개인의 개성보다 임무를 전면에 내세운다. 리베로 역시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경기의 균형을 떠받치는 기능적 존재로 규정된다. 화려함보다는 체계 속의 정확한 위치가 강조된다.
남한과 국제 배구계가 원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비해, 북한은 여전히 기능 번역을 고수한다. 이는 외래어 배척의 문제가 아니라, 용어가 곧 교육 교재이자 훈련 지침이 되도록 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자유방어수라는 말만 들어도 그 선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자유방어수는 리베로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 북한식 스포츠 언어가 지닌 철학의 산물이다. 스포츠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집단적 수행이며, 용어는 장식이 아니라 작동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코트 위에서 공을 살려내는 한 번의 몸 날림 속에는, 그렇게 다듬어진 언어의 질서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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