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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0]토론토의 거포, 터프가이 조 카터의 ‘추억’

매년 세 자릿수 타점 기록하며 토론토의 황금시대 열어

2014-02-22 16:49

▲현역시절의조카터.사진│토론토블루제이스
▲현역시절의조카터.사진│토론토블루제이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1990년대 메이저리그의 최강팀은 단연 뉴욕 양키스였다. 그들은 1990~1999년까지 세 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올랐는데 결과는 세 번 모두 우승(1996, 1998, 1999)이었다. 당시 네셔널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랐던 팀 중 두 번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라는 점도 다소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서브웨이 시리즈’로 열린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도 뉴욕 메츠를 가볍게 누르고 3연패에 성공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1년 이후 메이저리그는 월드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연속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양키스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전혀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양키스는 최악의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1981년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같은 지구에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승승장구하면서 199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를 주도했다. 그리고 1992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토론토는 바비 콕스 감독이 이끄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만나 4승 2패로 승리하며 캐나다 연고지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월드시리즈의 사나이’, 조 카터가 있었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터프가이 조 카터의 ‘추억’

1960년 3월,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카터는 1983년 6월에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모든 신인들이 그러하듯, 성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다(당시 51타수 6안타, 타율 0.176 기록).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클리블랜드 이적 이후 풀타임을 소화했던 1985년 부터였다. 그 해에 15홈런, 59타점을 기록하며 특유의 장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이듬해에는 29홈런-121타점으로 그 숫자를 늘렸고, 토론토 이적 전까지 5년 평균 109타점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이러한 장타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1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그 해에 33홈런-108타점을 기록하며 예열을 마친 그는 이듬해 34홈런-119타점을 기록하면서 당당히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물론 당시 라인업을 책임졌던 이들 중에는 로베르토 알로마, 디본 화이트, 존 올러루드를 포함하여 강타자 데이브 윈필드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압도적인 장타력이 아니었으면 1992년 토론토의 영광은 일어나지 못했을 수 있었다.

이후 토론토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데이브 윈필드를 떠나보내고 폴 몰리터를 영입하는 등 2연패를 향한 전력 강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투자는 곧바로 결과로 나타났다. 그 해 양키스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다시 지구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세를 이어간 토론토는 두 번째 맞이한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만났다. 그리고 당시 월드시리즈는 유난히 여러 사람들의 머리에 많은 추억을 남겼던 ‘가을잔치’이기도 했다.


양 팀은 4차전에서 선발 투수들이 일찌감치 물러나며 7회까지 14-9라는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이때까지는 필리스의 리드였다. 그러나 8회 공격을 맞이한 토론토는 6점을 한꺼번에 따내면서 기어이 역전에 성공했다. 9회가 종료됐을 때 전광판에 나타난 숫자는 15-14. 당시 뽑아낸 29점은 월드시리즈 최다 득점이었다. 여기서 사실 필리스의 기세가 한 풀 꺾인 셈이었다. 그리고 3승 2패로 토론토가 앞선 6차전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6회까지 5-1로 토론토가 앞서 있었지만, 필리스는 7회 초에 3점 홈런 등으로 5점을 빼앗아 역전에 성공했다. 이대로 간다면, 3승 3패의 상태에서 필리스가 다시 역전 우승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9회에는 필리스의 수호신 ‘미치 윌리엄스’가 마운드에 올라오면서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역사는 바로 이 때 만들어졌다. 1사 1, 2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조 카터는 윌리엄스가 던진 공을 정확히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3점 홈런’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이 홈런은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윌리엄스는 이 한 방으로 이듬해부터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토론토의 월드시리즈 2연패는 메이저리그 판도가 크게 변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그 전력을 제대로 유지만 해도 장기 집권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월드시리즈가 선수 노조 파업으로 인하여 열리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토론토 역시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한 가운데, 카터는 1998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꾸준히 제 몫을 했다. 특히 토론토에 몸담았던 1991~7시즌에는 거의 매년 두 자릿수 홈런과 세 자릿수 타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의 누적 스텟은 203홈런, 736타점이었다. 토론토의 영광을 이끌었던 그의 공적은 추후 ‘캐나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카터 이후 토론토에는 카를로스 델가도와 호세 바티스타라는 걸출한 거포가 등장했지만, 카터가 이끌었던 1992~3년과 같은 우승의 영광은 재현하지 못했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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