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밖을 나서면 거리는 사우나 한증막이고 10여 분 걷기도 힘들고 머리도 멍해지는 날이 계속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함성이 돌아오겠지만, 지금 이 침묵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뛰지 않는 쪽이 오히려 더 똑똑한 선택일 수 있을까.
우리 뇌 깊숙한 곳, 뇌간 바로 위에는 체온을 24시간 감시하는 자동 온도조절기가 있다. 시상하부라는 이 작은 기관은 혈액 온도가 0.5도만 올라가도 즉시 반응해 땀샘을 열고 혈관을 넓힌다.
문제는 이 조절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체온이 그 범위를 넘어서면 시상하부는 비상경보를 울리는 동시에 판단의 사령탑인 전두엽으로 가야 할 자원을 끌어다 쓴다.
몸을 식히는 데 에너지를 쏟느라, 정교한 판단이나 순발력 있는 반응에 쓸 여력이 남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폭염 속 경기에서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책, 느린 주루 판단, 유독 예민해진 반응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더위 속 반응 속도와 집중력을 측정한 여러 연구들은 체온이 오를수록 판단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다는 결과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몸이 뜨거워질수록 뇌는 오히려 둔해진다는 역설, 이것이 시상하부가 매일 우리 몸으로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 조절기는 선수에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뙤약볕 아래 앉아 몇 시간씩 응원하는 관중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다.
지난 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는 경기 도중 관중 25명이 온열질환 의심 증상을 호소해 치료를 받았고, 이 중 2명은 의식이 저하되는 중증 증세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시상하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땀과 갈증이라는 신호로 위험을 미리 알려주지만, 탈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이 경보 시스템 자체가 둔해진다.
갈증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고, 어지럼증 같은 초기 신호를 뇌가 제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물을 마셔야 할 때 몸이 신호를 놓치는 셈이니, 관중석의 온열질환은 흔히 '괜찮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찾아온다. 폭염 안전 수칙이 하나같이 '목마르기 전에 미리 마시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KBO도 이 원리를 몸으로 배운 듯하다. 지난 1일 창원과 부산에서 첫 폭염 취소가 나왔고, 6일 긴급 실행위원회를 열어 10일까지 경기를 전면 중단했다. 안전 대책이 먼저였다.
재개 이후에도 9월 6일까지는 경기 시작 시간을 저녁 7시로 늦추고, 폭염 중대경보가 발효된 지역에서는 경기를 자동으로 취소하는 기준도 새로 세웠고, 3회와 7회가 끝나면 이닝 교대 시간을 늘려 쿨링 브레이크를 고정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달 말 사직구장에서는 경기 시작 전 스프링클러가 그라운드를 적셨고, 잠실에서는 한 팀 응원단이 물대포로 관중석 열기를 식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번 결정으로 올 시즌 폭염 때문에 취소된 경기는 30경기에 이른다.

불과 2년 전인 2024년 8월 한 달간 폭염 취소가 네 경기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여름 더위가 얼마나 예외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 팀은 이달 초부터 이어진 취소 여파로 여드레 넘게 실전 감각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재개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순위 다툼의 유불리를 떠나, 어느 팀도 이 불규칙한 멈춤을 피해가지 못했다.
손자병법 군쟁편에는 이일대로(以逸待勞)라는 구절이 나온다. 편안하게 쉬며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훗날 병법 36계 가운데 네 번째 계책으로도 꼽혔다.
힘을 쏟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쪽보다, 때를 가려 쉬는 쪽이 결국 더 멀리 간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프로야구가 그라운드를 비운 엿새는 패배의 공백이 아니라, 9월까지 이어질 긴 레이스를 위해 선수와 관중 모두의 뇌에 회복할 여유를 되돌려주는 시간이다.
화요일부터 다시 경기 사이렌이 울리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설 것이다. 그 함성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지금 몸의 경보를 무시한 채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원한 그늘에서 물 한 잔 챙기는 그 잠깐이, 그라운드의 선수에게도 관중석의 나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시간이다.
엿새의 침묵 끝에 돌아올 함성이 반가운 이유는 그 함성을 다치지 않고 함께 지켜낼 수 있어서일 것이다.
때로는 멈추는 것이야말로, 다음 승부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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