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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16 ] 북한 육상에서 왜 '필드'를 '투척·도약경기장'이라 말할까

2026-03-07 08:08

지난해 창립 80주년을 맞은 북한 김일성경기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해 창립 80주년을 맞은 북한 김일성경기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육상 용어 ‘필드’는 영어 ‘field’를 음차한 말이다. 육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종목은 크게 트랙과 필드종목으로 나뉘어지는데 주어진 코스를 달리는 트랙종목과는 달리 필드종목은 트랙 안에서 벌어지는 종목을 말한다. 필드종목의 정식 영어 명칭은 ‘field event’라고 말한다. 필드 내에서 하는 종목은 크게 도약경기(jumping events)와 투척경기(throwing events)로 나눈다. 도약경기는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세단뛰기, 멀리뛰기 등이 있으며, 투척경기는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해머던지기 등이 있다.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필드경기는 트랙경기와 함께 열린다.

필드라는 말은 골프 뿐 아니라 여러 종목에서 경기장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야구에선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장소를 필드라고 부른다. 폴 딕슨의 야구용어사전에 따르면 1845년 제정된 최초의 야구룰인 ‘니커보커 룰’ 10항에서 ‘필드 밖으로 나가는 볼은 파울(foul)’이라고 설명했다.

필드의 어원을 따져보면 고대 영어 ‘feld’, 독일어 ‘feld’, 덴마크어 ‘felt’로 이어진다. 모두 서양어의 뿌리인 인도유럽어 어근인 평평하다는 의미의 ‘pele’에서 나온 말이다. ‘Pel’ 발음이 우리말 발음 ‘벌(벌판 뜻)‘과 같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고대 시대에 동서양간에 언어적 동일성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낳는다.

고대 영어 ‘feld’는 ‘평야, 탁 트인 땅’을 뜻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등에 따르면 필드가 스포츠와 관련한 의미로 쓰인 것은 1742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스포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국내언론서 필드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일보 1924년 10월9일 ‘전조선여자 육상경기대회’ 기사이다. 이 기사는 ‘조신주최 제이회전조선여자육상경기대회(朝新主催第二回全朝鮮女子陸上競技大會)는 내십칠일(來十七日)(우천(雨天)이면십팔일(十八日)) 훈련원사범학교(訓鍊院師範學校)『그라운드』에 개최(開催)될터인데 참가신청(參加申請)은 십이일(十二日)까지 이라하며 경기종목(競技種目)은 아래와갓다고. ◇『트락그』부(部) 오십미(五十米).백미(百米).이백미(二百米).사백미(四百米). 사백미(四百米)리레.팔백미(八百米)리레. ◇『필드』부(部) 주고도(走高跳).주폭도(走幅跳).포환척(砲丸擲).『바스 켓몰』『발레뽀ㄹ』’라고 보도했다. 우리보다 먼저 육상경기를 도입한 일본을 통해 필드라는 종목이 국내에 소개됐던 것이다. (본 코너 665회 ‘육상에서 필드라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참조)
북한에선 필드를 단순히 음역하지 않고 ‘투척 경기와 도약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라는 의미를 살려 ‘투척·도약경기장’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외래어를 음역하기보다 경기의 동작이나 기능을 설명하는 명칭을 선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은 북한 스포츠 용어 전반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릴레이를 ’이어달리기‘, 허들을 ’장애물달리기‘, 그리고 ’해머던지기‘를 ’추던지기‘라고 말한다. 외국어를 소리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방식이다.

북한의 이런 용어 정책에는 언어적 자립을 강조해 온 사회적 배경이 있다. 외래어 사용을 줄이고 우리식 표현을 늘리려는 정책 속에서 스포츠 용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국제 스포츠계에서 통용되는 영어 중심 용어 대신 의미 중심의 번역식 명칭이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표현이 때로는 국제 용어보다 더 설명적이라는 사실이다. 필드라는 단어만으로는 경기 내용을 알기 어렵지만, 투척·도약경기장이라는 표현은 그곳에서 어떤 종목이 열리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국제 대회에서는 영어 용어가 표준이지만,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식 표현도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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