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심리학에는 '부정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뇌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훨씬 강하고 오래 저장한다. 굶주림이나 맹수의 습격 같은 위협 정보가 생존에 훨씬 중요했던 원시 시절부터, 뇌는 '위험 감지 우선' 시스템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0-5 완패의 기억은 다음 날 중국전 9-2 승리보다 훨씬 선명하게 새겨진다. 문제는 이 기억이 그냥 저장되고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의 경보기 역할을 하는 편도체가 패배 장면을 반복 재생하는 동안,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은 어느 타이밍에 스윙이 늦었는지, 어떤 카운트에서 성급했는지를 짚어내며 구체적인 '설계도'를 뽑아낸다. 분노가 전략으로 전환되는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복수 동기'라 부른다. 단순한 화풀이와 달리, 목표 지향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2010년 광저우부터 이어온 금메달 행진이 이번 대회로 5연속이 됐다는 기록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완패를 당한 지 이틀 만에 같은 상대를 상대로 전혀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뇌가 패배를 학습 자료로 전환하는 데 걸린 시간이 딱 그만큼이었던 셈이다.
이 장면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라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전국시대 자객 형가가 원수를 갚기 위해 마음을 다잡던 장면에서 유래했다. 복수를 향한 집착이 아니라, 패배의 기억을 구체적인 준비로 바꿔내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
당신도 최근에 이를 갈았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회의에서 밀렸던 기억, 시합에서 졌던 순간, 누군가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느꼈던 그 하루 말이다. 뇌는 그런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 날, 무엇을 하나라도 다르게 해볼 것인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야구가 이틀 만에 보여준 건 결국 그 하나였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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