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AI 에이전트와 실시간 협업하여 만든 바둑 프로그램을 시연하며 AI 에이전트의 훈수에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1407175904280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그가 정형화된 틀을 깨야한다고 한다는 예로 든 것이 바둑계에서 극 초반에 두지 말라고 금기시하던 ‘3·3’ 자리이다. 이 교수와의 대국에서 AI는 거리낌없이 뒀고, 그 수가 틍ㄹ린 선택이 아님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가 갇혀 있던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AI가 보여준 셈”이라며 지적했다.
3·3은 특별한 고유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바둑판의 좌표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나온 용어이다. 바둑판은 귀를 기준으로 선을 세는데, ‘3·3’은 귀에서 가로 3선과 세로 3선이 만나는 점이다. 한자어로 ‘삼삼(三三)’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3·3은 "세 번째 줄 × 세 번째 줄"이라는 뜻이지, 어떤 별도의 이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삼이라는 명칭은 비교적 현대적인 좌표식 표현이다. 전통 바둑에서는 ‘소목(小目)’, ‘화점(花點)’, ‘고목(高目)’, ‘천원(天元)’처럼 각 자리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여 불렀다. 반면 3·3은 오랫동안 특별한 이름 없이 좌표 개념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고, 현대에 들어 좌표 표기가 일반화됐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 삼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38년 6월27일자 ‘戰線隨機移動(전선수기이동)은 果然大家(과연대가)의度量(도량)’ 기사에서 ‘黑三三(흑삼삼)으로 衝出(충출)하여 三五(삼오)로 斷(단) 絶(절)하는 것이 當然之事(당연지사) 같으나’라고 적었다. 이는 1930년대 후반 이미 '삼삼(三三)'이라는 용어가 국내 바둑 기사와 독자들에게 통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당시 한국 바둑계는 일본 바둑계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산산(三々)'이라는 용어가 한자 표기인 '삼삼(三三)'으로 정착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바둑에는 361개의 점이 있다. 귀에서 세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이 만나는 작은 점인 3·3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바둑의 철학과 승부의 본질이 모두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 귀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집을 확보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중앙을 향한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대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집이라는 확실한 성과를 가장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위치인 셈이다.
이 때문에 3·3은 단순한 좌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를 상징한다. 당장의 확실한 이익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넓게 세력을 펼칠 것인가. 바둑의 수많은 판단은 결국 이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3·3은 그 균형의 한 축을 대표한다.
흥미로운 점은 3·3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화점에 돌을 놓아 세력을 키우고, 충분한 준비가 된 뒤에야 3·3으로 침입하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졌다. 너무 이른 3·3 침입은 답답하고 소극적인 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상식을 뒤집었다. AI는 초반부터 과감하게 3·3에 들어가는 수를 수없이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실리를 먼저 확보한 뒤, 남은 공간에서 충분히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바둑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바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화려한 가능성만 좇기보다 먼저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만드는 사람은 위기를 견디는 힘이 강하다. 집을 짓기 전에 기초를 다지는 일처럼, 안정은 도전의 반대말이 아니라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3·3이 정답은 아니다. 상대의 세력을 견제해야 할 때도 있고, 넓은 영향력을 먼저 확보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3·3이라는 한 점이 상황을 읽고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사고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바둑은 늘 정답보다 판단을 묻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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