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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05] 바둑에서 왜 '국수(國手)'라고 말할까

2026-06-06 07:19

이창호 9단(오른쪽)과 조훈현 9단.[한국기원 제공]
이창호 9단(오른쪽)과 조훈현 9단.[한국기원 제공]
김성동의 장편소설 ‘국수’에서 제목 국수(國手)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둑 최고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김성동은 직접 "국수란 바둑만이 아니라 소리, 악기, 무예, 글씨, 그림 등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에도 바둑꾼뿐 아니라 판소리꾼, 무인, 화가, 장인 등 다양한 국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국수는 바둑 최고수에게 붙는 칭호로 익숙하다. 그러나 이 말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바둑판을 넘어선 오래된 동아시아 문화의 결을 만날 수 있다. ‘나라 국(國)’과 ‘손 수(手)’자로 된 국수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라의 손'이다. 여기서 손(手)은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다. 예부터 손은 기술과 재능, 솜씨를 상징했다. 명의의 손, 장인의 손, 명필의 손이 그러하다. 따라서 국수란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했다. (본 코너 14회 '‘선수(選手)’에 ‘손 수(手)’자가 들어간 까닭은' 참조)

국수는 중국의 고전에서도 원래 특정 분야의 으뜸가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처음부터 바둑 기사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기예를 갖춘 사람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존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이 말을 사용했다. 인터넷판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국수라는 말은 국역 1회, 원문 6회 검색된다. 우리나라 언론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때도 바둑에서 국수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3년 5월13일자 ‘조선고금인물(朝鮮古今人物) (삼칠구(三七九))’ 기사는 ‘왈백공(曰白公)의재(才)를 위기(圍碁)에 비(比)하건대 혹시(或時)에는 그의고착(高着)이 가(可)히 국수(國手)를 대적(對敵)할만하나 혹시(或時)에는 난착(亂着)하나니 가(可)히의시(倚恃)할재(才)는안이라’라고 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국수(國手)가 이미 1920년대에 바둑 최고수를 뜻하는 비유어로 일반 언론에서 통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기사를 현대어로 옮기면 ‘백공의 재능을 바둑에 비유하자면, 때로는 그의 묘수가 국수와 맞설 만큼 뛰어나지만, 때로는 악수가 나오니 믿고 의지할 만한 재능은 아니다’이다. (본 코너 1801회 ‘왜 '바둑'이라 말할까’ 참조)

한국에서 국수는 바둑계의 최고 영예로 평가된다. 국수전 우승자는 단순한 챔피언이 아니라 당대 최강자의 상징이었다. 한때 국수라는 두 글자는 곧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 한 사람의 이름과 다름없었다. 바둑 팬들은 국수의 한 수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었고, 새로운 국수의 탄생에서 세대교체를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국수라는 말이 실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수에게는 늘 품격과 책임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나라를 대표하는 손이라는 이름에는 승부를 넘어서는 기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수를 이야기할 때 단지 몇 집을 이겼는지보다 어떤 바둑을 두었는지, 어떤 태도로 승부를 대했는지를 함께 기억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수들을 넘어선 시대가 됐다. 그러나 국수라는 말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승패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름에는 인간이 오랜 세월 갈고닦아 온 정신과 기예에 대한 존경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국수는 바둑판 위의 챔피언이기 전에 한 시대가 인정한 최고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은 돌을 놓는 손이면서 동시에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손이기도 했다. 바둑 한 판이 끝나도 국수라는 이름이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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