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인은 중국 고전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바둑 용어가 아니라 서예, 음악, 그림, 의술, 병법 등 다양한 분야의 대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능인(能人)’, ‘달인(達人)’이라고도 했지만, 명인은 사회적 명성과 권위를 함께 갖춘 사람을 의미했다.
바둑에서 명인이 특별한 칭호가 된 것은 일본에 의해서이다. 에도시대 일본 바둑계에는 네 개의 바둑 가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최고 실력자를 국가가 인정하여 명인(名人)으로 임명했다. 당시 명인은 단순한 우승자가 아니라 최고의 실력, 바둑 이론 창조 능력, 후진 양성 능력,인품과 권위까지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명인은 오늘날의 세계챔피언보다 오히려 더 넓은 개념이었다.
일본 바둑계에서는 명인 타이틀을 5연패하거나 통산 10기 이상 방어한 기사에게 은퇴 후 또는 60세 이후에 ‘명예 명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주어지고, 명인 타이틀을 통산 5기 이상 획득한 기사에게 은퇴 후 ‘영세 명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주어진다. 일본에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은 일본의 전설적인 바둑 기사 혼인보 슈사이가 후배 기사인 기타니 미노루와 1938년에 치른 은퇴 대국을 모티브로 삼아서 집필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부터 명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인이라는 단어가 국역 40회, 원문 356회가 검색된다. 유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한국에서 바둑 용어로 명인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본 바둑 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7년 11월16일자 ‘각설(各說)이분운(紛紜)한 바둑유래(由來)’ 기사는 ‘맹자(孟子)에도 혁(弈)의 명인(名人)인 혁추(弈秋)의 이야기가 나오고 좌전(左傳)에도 혁(弈)에대(對)한 말이 쓰이어잇다. 이걸로 본다면 춘추시대내지(春秋時代乃至) 전국시대(戰國時代)로부터 한사(漢士)에는 이미 바둑이 잇섯다는것을 알ㅅ수가잇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문장은 당시 한문 교양을 바탕으로 바둑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명인이라는 말의 역사적 뿌리를 소개한 대목이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혁추(弈秋)는 중국 고대 문헌에서 가장 유명한 바둑 명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은 일본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인전’을 만들었다. 한국일보에서 창설하였고 2016년에 폐지되었다가 2021년부터 다시 SG배 명인전으로 재개됐다.
바둑에서 명인은 실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 옛날 일본 바둑계에서는 명인을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기술이 아니라 품격 때문이었다. 수를 읽는 능력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수를 넘어 판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은 오랜 세월 속에서만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명인은 기예의 왕이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의미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바둑 프로그램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수를 계산하는 능력만으로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명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명인은 단순히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인은 자신이 왜 그 수를 두었는지 알고, 패배의 의미를 알고, 기다림의 가치를 아는 존재다. 인공지능은 최선의 수를 찾을 수 있지만, 인간은 그 수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명인은 여전히 사람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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