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씨름은 대표적인 풍속화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전통 민속놀이인 씨름 경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겨루는 순간을 중심으로, 주변에 모여 구경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자세가 함께 그려져 있다.
중앙의 씨름 선수들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배치한 현장감 있는 구도, 구경꾼들의 웃음과 긴장 등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는 생동감 있는 인물 표현, 그리고 양반이 아닌 평민들의 일상과 놀이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경기 장면을 넘어 당시 조선 사회의 분위기와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씨름이라는 순우리말 형태는 조선 후기부터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18~19세기 문헌과 풍속 기록에서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확인된다.
그러나 씨름 자체는 훨씬 오래된 민속놀이다. 고구려 벽화 등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며,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한자어로 ‘각저(角抵)’, ‘각희(角戱)’, '각력(角力)'같은 이름이 사용되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한자 원문으로 각력이라는 말이 4회 검색되며 국역으로 씨름이라는 말이 15회 등장한다. 따라서 씨름과 같은 놀이는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씨름이라는 순우리말 명칭은 조선 후기에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씨름의 어원은 정확히 하나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유력한 설이 제시된다. 먼저 ‘씨’(힘·기운)와 ‘-름’(행위)의 결합이라는 설명이다. ‘씨’는 옛말에서 기운, 즉 힘의 근원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며, 여기에 명사형 어미 ‘-름’이 붙어 ‘힘을 겨루는 행위’라는 뜻의 ‘씨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이다.
다음으로 ‘씨다’(겨루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씨다’라는 고어가 ‘다투다’, ‘겨루다’의 의미였고, 여기에 ‘-름’이 붙어 ‘씨름’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시름’(걱정)과의 음운 변화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의미상의 연관성이 약해 크게 지지되지는 않는다.
씨름은 단지 체육경기가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씨름은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체의 의례로 열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힘을 겨루며 결속을 다졌고, 이긴 자는 장사(壯士)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씨름판에서는 상대를 꺾기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강조되었다. 상대를 들어 올리되 다치게 하지 말라는 금언은 경쟁 속에서도 상생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를 밀어내며 버티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공동체의 온기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씨름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겨룸은 파괴를 위한 것인가, 공존을 위한 것인가. 진정한 승부는 상대를 넘어뜨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짐 속에서 배우고 다시 손을 맞잡는 데 있다. 언어의 뿌리 속에서 발견되는 이 싸움의 미학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를 동시에 비추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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