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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965] 테니스에서 왜 ‘슬라이스(slice)’라고 말할까

2023-04-21 06:16

현역시절 다양한 슬라이스를 위력적으로 구사했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역시절 다양한 슬라이스를 위력적으로 구사했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어에서 슬라이스는 여러 뜻을 갖는다. 명사로는 얇은 조각이나 부분을 의미한다. 스포츠용어로는 타자가 공을 깎아서 치는 샷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골프, 테니스 등에서 많이 쓰지만 두 종목에서 쓰이는 의미는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많다. 골프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지는 샷을 의미하며, 테니스에선 공을 깎듯이 치는 타법을 가르킨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slice’의 어원은 서기 800년부터 1100년 사이의 남부 독일어인 ‘slihhan’이며, 앵글로 프랑스어 ‘’sclice’를 거쳐 현대 영어로 차용됐다. 15세기부터 잘라낸 얇은 조각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며, 1890년부터 골프용어로 사용했다. 테니스는 골프용어를 차용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야구용어사전 ‘딕슨 베이스볼 딕셔너리’에 의하면 깎아서 친 타구가 오른쪽이나 왼쪽 필드로 날아가는 것을 말하는 슬라이스도 골프에서 빌려왔다고 설명한다.

테니스에서 슬라이스는 백스핀(backspin)을 줘서 치는 샷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서브 또는 드라이브 샷을 칠 때, 공의 상단에 회전을 가하여 공이 비스듬히 날아가고, 상대방의 라켓에 닿을 때는 뒷면에서부터 닿아 뒤로 튕겨 나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스핀 공격은 상대방이 받기 어려워하는 공격 방식으로, 경기에서 많은 이점을 가져다준다. 예를들어 라켓으로 공의 아래쪽을 깎아 역회전을 주면 네트 너머서 공이 갑자기 멈추거나 지면에 닿은 뒤 뒤쪽으로 바운스 된다. 상대 선수는 백스핀 걸린 공이 날아오면 리턴 동작을 맞추기가 어렵고, 넘기더라도 상대편에 오히려 성공률 높은 공격 기회를 제공하기가 쉽다. 슬라이스에 속하는 칩(chip), 촙(chop), 드롭샷(drop shot), 스톱발리(stop volley) 등은 백스핀이라고도 말한다.(본 코너 951회 ‘테니스에서 왜 ‘백스핀(backspin)’이라 말할까‘ 참조)

백핸드가 잘 안되는 선수들이 흔히 슬라이스를 애용한다고 한다. 백핸드 슬라이스를 칠 때는 한 손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선수들은 백핸드로 슬라이스를 칠 때는 라켓을 들고 있는 팔을 마치 스프링처럼 크게 튕겨낸다. 준비 동작이 매우 크고 의도가 명백한 샷이기 때문에 슬라이스를 승부처에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서브로 활용할 때는 백스핀이 아니라 공 옆쪽을 깎아서 사이드 스핀을 건다. 일반 서브나 스핀 서브에 비해 속도는 훨씬 느리지만 뚝 떨어지는 야구 슬라이더와 비슷한 구질이 생긴다. 마치 부메랑처럼 날아가는데 제대로 먹힌 슬라이스 서브는 상대방을 코트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왼손잡이가 칠 경우 오른손잡이의 백핸드 쪽으로 빠지기 때문에 위력이 배가될 수도 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전성기 시절 결정률 높은 백핸드 슬라이스를 즐겨 구사했다. 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완벽한 백핸드 슬라이스를 상대를 공략했다. 시속 150마일의 속도로 날아오는 상대의 강력한 서브도 러닝 슬라이스로 걷어내는 고도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테니스, 골프 등에서 슬라이스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슬라이스’, ‘슬라이스 서브’, ‘슬라이스 스트로그’ 등의 표현이 테니스 경기 기사안에 선보였던 것이다. 조선일보 1972년 11월9일자 ‘테니스 교실(教室) ⑦ 누구나 즐길수 있는 스포츠’ 기사는 ‘△슬라이스(s1ice)=슬라이스란 코트에떨어진 공의하브를 역회전으로쳐서 얕게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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