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351] 북한은 축구용어를 어떻게 쓰고 있을까

김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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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1-04-1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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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는 '주체식' 표기법으로인해 용어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사진은 남북축구대표팀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축구 용어를 처음 들으면 아주 낯설다. 단어 자체가 우리 고유어로 대체해 쓰기 때문이다. 패스(Pass)를 ‘연락’이라 하고, 핸들링(Handling)을 ‘손다치기’라고 말한다. 할리우드 액션으로 말하기도 하는 시물레이션액션(Simulation Action)을 ‘엄살동작’이라고 표현한다. 골잡이가 손을 써 볼 사이도 없이 골인되는 공을 ‘통골’이라고 말할 때는 그 뜻을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포지션에 대한 북한식 용어는 그런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골키퍼(Goal Keeper)를 ‘문지기’, 라이트 풀백(Right Fullback)을 ‘오른쪽 방어수’, 미드필더(Midfielder)를 ‘중간방어수’, 레프트 윙(Left Wing)을 ‘왼쪽 날개’, 센터 포워드(Center Forward)를 ‘가운데 몰이꾼’ 이라 말하는 것은 북한 축구대표팀 경기를 볼 때 자주 소개됐다.

축구 규칙 용어는 좀 생소하게 들린다. 오프사이드(Offside)는 ‘공격어김’, 페널티킥(Penalty Kick)은 ‘11m 볼차기’, 킥 오프(Kick Off)는 ‘첫 차기’, 코너킥(Corner Kick)는 ‘모서리 차기’, 프리킥(Free Kick)은 ‘벌차기’, 옐로우카드(Yellow Card)는 ‘경고표’, 드로우인(Throw-In)은 ‘던져넣기’,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은 ‘경기과정에 허비한 시간’이라고 부른다.

축구 기술 용어도 생소한 말이 많다. 크로스(Cross)는 ‘중앙으로 꺾어 차기’, 헤더(Header)는 ‘머리받기’, 오버헤드킥(Overhead Kick)은 ‘머리 넘겨차기’, 체스트 패스(Chest Pass)는 ‘가슴연락’, 트래핑(Trapping)은 ‘멈추기’, 드리블(Dribble)은 ‘공몰기’, 다이렉트 킥(Direct Kick)은 ‘단번 차 넣기’라고 말한다.

축구 경기장 용어로는 홈 그라운드(Home Ground)를 ‘자기 마당’, 크로스바(Cross Bar)를 ‘가로막대’, 골포스트(Goal Post)를 ‘축구문’, 코너플랙(Corner Flag)을 ‘구석깃발’이라고 쓴다. 대회 명칭으로 월드컵(World Cup)를 ‘세계축구선수권대회’, 2라운드 첫 경기를 ‘2단계 1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이 한자어와 외래어 대신 우리 고유어로 바꿔서 스포츠용어를 쓰는 것은 이른바 ‘주체사상’을 생활화하려는 정책적 의도에서 비롯됐다. 북한이 국제 공용어를 그대로 쓰는 우리식 표기와는 달리 ‘주체식’ 표기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오래됐다.


북한은 해방 뒤 일제 강점기 주시경의 제자였던 김두봉과 조선어학회 우두머리였던 이극로 등이 주도해 민족주의를 앞세워 한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어 순화운동을 벌였다. 외래어를 배제하고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어로 대부분의 말을 바꿔 사용하게 했다. (본 코너 125회 ‘ 북한에선 ‘그린’을 ‘정착지’라고 말한다구?‘ 참조)

해방이전 남북한 축구용어는 똑같았다. 서울과 평양은 ‘경평대항 축구전’이라는 도시대항전을 가지며 활발하게 교류했다. 1929년 10월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조선일보사가 제1회 경평전을 개최한 것이 경평전의 시작이다. 조선일보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서울-평양간의 라이벌 의식이 맞물리면서, 대회가 거듭될수록 서울, 평양 각 시민은 물론 전 국민의 관심거리가 됐다. 경평전은 1930년 제 2회 경평전을 끝으로 주최측인 조선일보사의 사정으로 1931년과 1932년 두 해 동안 열리지 않아, 무산될 처지에 이르렀으나 1933년 4월 평양축구단이 창단을 기념하여 경성대표를 초청함에 따라 경평전이 부활되었다. 그러나 경평전은 1935년 제4회 경성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에서 마지막으로 치러졌다.

해방이후 남북한에 각각 체제와 이념이 다른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이 독자적인 자립노선을 취하게 됨에 따라 남북한은 전쟁을 치르며 대립과 반목을 이어갔다. 북한은 축구를 국가 홍보 수단으로 삼아 정책적으로 육성하며 각종 용어들도 독특한 표기법으로 사용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오른 북한 축구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남북 축구대결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북한 축구 용어의 실상이 전해진 것도 이 때부터였다.

남북한은 75년 이상 분단의 역사를 통해 이제는 축구 용어가 서로 알아 들을 수 없을만큼 큰 차이를 보인다. 축구 용어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남북한이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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