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령대로 오랜 시절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생활하며 친숙해진 이들은 공교롭게도 중동에서 골프를 완성(?)했다.
김동광 전 감독은 1983년 바레인 농구대표팀 코치로 있으면서 골프채를 잡았다. 주위 지인들로부터 한두마디 듣고 혼자서 채를 휘둘렀다. 쉬는 시간이 꽤 있을 때였다. 사막으로 나가 수없이 두들겼다. 그렇게 3개월, 바레인 한인골프대회에서 96타를 쳤다.
이인 전 감독은 현대자동차 감독 시절인 1986년 입문했다. 가락동 한 골프연습장의 소속 프로에게 골프를 배웠다. 하체가 워낙 튼튼해 스윙이 빨리 잡혔고 폼도 좋았다. 그렇게 3개월,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CC(현 캐슬렉스CC)에서 93타를 기록했다.
이 감독은 1988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배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두바이로 갔다. 3년간 머물면서 사막골프장에서 스윙을 단련했다.
김 감독은 1986년 귀국 후 한동안 골프를 멀리했다가 대표팀 코치 시절 김인건 감독의 권유로 1991년 쯤 다시 시작했다. 틈만 나면 연습장을 찾았다. 100박스는 보통이었다. 라운딩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 언제가를 대비해 엄청나게 연습했다. 선수촌 주변이나 집 근처의 연습장에 출퇴근도장을 찍을 정도였다. 국가대표 출신인데 못 친다면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김 감독은 1990년 남수원골프장 16번 홀, 이 감독은 1994년 4월28일 관악CC(현 리베라CC) 구코스 7번 홀에서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이 감독이 4언더, 김 감독이 이븐파.
드라이브 거리는 둘 다 300야드 언저리. 물론 한창때의 이야기로 지금은 230야드면 훌륭하다. 젊은 시절엔 평균적으로 이 감독의 거리가 20야드 정도 더 나갔고 스코어도 더 좋았다. 함께 라운딩 한 사람들의 총평은 핸디캡 10근처에서 이인의 3~4타 정도 우세.
비슷한 조건이라면 배구 선수가 농구보다 골프를 더 잘 한다. 배구는 하체가 더 발달했으며 때리는 능력도 더 뛰어나다. 스파이크는 타점이 정확하고 힘이 좋아야 하는데 이 점이 골프에 큰 도움이 된다. 이 감독의 현역시절 허벅지 둘레는 26인치였다.
농구도 하체 힘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배구보단 약하다. 때리는 행위가 아니고 던지는 행위인 탓인데 집어넣은 것이 일이다 보니 퍼팅만은 농구가 앞선다.
하지만 1원이라도 걸린 실제 라운딩에선 이인 감독이 김동광 감독을 쉽게 이기지 못한다. 김동광 감독에겐 농구장에서 익힌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입이다. 골프장에서 흔하게 쓰는 일본말 구찌 겐세이(口 牽制)로 한마디 슬쩍 흘리면 이 감독은 바로 반응한다.
배구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멘탈에 약한 편이다. 네트로 내편 네편을 갈라놓아 적군과 직접 부딪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구는 쉴 새 없이 부딪치면서 험한 말을 주고받는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부터 가벼운 겁주기와 협박까지 거친 입 공격이 판을 친다. 심판은 절대 알 수 없는 적당한 ‘말 공격 반칙’. 농구선수의 숨은 공격 비법이다.
김동광 감독은 입방아의 위력을 안다. 삼성 감독 시절 함께 라운딩 했던 김영기 전 KBL총재의 한 마디에 무너진 경험이 있다. 그날따라 공이 잘 맞았다. 전반 36타였다. 뭔가 한 건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후반엔 52타. “넌 애들 안 가르치고 골프만 쳤냐?” 는 김 총재의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흔히 하고 듣는 말인데도 한 번 뇌리에 박히니 빠지질 않았다.
김 감독이 가끔 써 먹는 멘트는 옛날엔 ‘거리가 정말 대단하다. 물을 넘겨 보지, 원온 해보지, 최소 벙커는 넘기겠다’ 등 부추겨서 거리 욕심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 든 후엔 ‘거리가 많이 줄었네, 200미터도 안 나가겠는데, 이제 벙커 못 넘기니니 피해서 가지’등 거리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목적은 헛 힘을 쓰게 해서 빗나가거나 실수하게 하는 것인데 성공률이 꽤 높은 편이다.
한땐 승부를 다퉜으나 이젠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은 오랜 친구들. 그래서 골프는 여전히 어렵지만 골프장 가는 길은 늘 즐겁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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