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8 박경완의 중석몰촉(中石沒鏃)](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310124925090828f6b75216b222111204228.jpg&nmt=19)
-화살이 바위를 뚫다. 정신을 집중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기 이장군전
박경완은 긴장했다. 빈볼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홈런을 연거푸 세 개를 맞으면 누구라도 화 날 일이었다.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6회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홈런 욕심은 없었다. 승부는 끝난 상태, 몸조심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마운드의 김경원은 ‘억지 승부’를 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속도의 직구가 몸 쪽으로 들어왔다. 공이 수박만 하지도 않았고 공의 실밥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치기 좋은 공이었다. 힘을 실어 마음껏 휘둘렀다.
치는 순간의 짜릿한 손맛. 홈런임을 직감했지만 또 홈런일까 싶었다. 고개를 들어 타구를 쫒았다. 공은 좌중간 펜스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2점짜리 장외 홈런이었다.
어떻게 베이스를 밟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홈베이스를 밟을 때는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팀 동료들이 난리법석이었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2000년 5월 19일 대전 현대-한화전. 2회 첫 타석에서 한화 선발 조규수를 좌월 솔로 홈런으로 두들긴 박경완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지난 밤 까닭없이 뒤척이다가 해가 훤히 뜬 아침 8시에야 잠이 들어 걱정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 묘했다. 잠을 설쳤는데도 정신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홈베이스를 밟으며 생각하니 유난히 공이 뚜렷하게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3회 두 번째 타석. 조규수는 첫 타석 때와 비슷한 공을 던졌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산뜻한 공, 마치 2회의 장면을 재현하는 듯 했다. 중월 2점 홈런. 박경완은 2회 첫 타석 때 필름을 다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5회 세 번 째 타석. 마운드는 바뀐 오창선이었다.
“오창선이 공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문득 공의 실밥이 자세히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 저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그게 보일 리 없는데 참 별일이네라고요.”
홈런 이런 생각없이 그냥 타석에 섰다. ‘오늘은 직구가 편하네’하는 생각을 하며 직구를 노렸다. 마침 오창선이 직구를 던졌다. 타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4연타석 홈런, 19년 프로야구 사상 첫 기록이었다. 미국은 루게릭(32년 6월3일) 등 4명, 일본은 왕전즈(王貞治.64년 5월3일)가 유일한 대기록이었다.
집중은 하지만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중석몰촉의 비결이다. 박경완이 홈런기록 욕심을 냈다면 어깨에 힘을 들어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3,4번째 홈런은 화살이 바위를 뚫는 대신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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