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37] 바둑에서 왜 '계가(計家)'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0806384804897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계가는 한자로 '셀 계(計)'와 '집 가(家)'를 쓴다. 글자 그대로 집을 센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한자어에서 ‘家’는 '사람'이나 '전문가'의 뜻으로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처음 보면 '계가'를 '계산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둑 용어에서는 家를 '집'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전통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계가하다(計家하다)'는 바둑에서만 거의 쓰이는 전문 용어로, 일반 국어에서는 '계산하다', '채점하다'와 같은 표현이 대응된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계가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원문 9회가 검색된다. 조선시대에도 이미 계가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바둑 용어가 아니라 집을 계산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우리나라 언론은 개화기 이후에도 계가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5년 10월26일자 ‘모든가뎡의가계(계가(計家)) 를밝히삽시다’ 기사에서 ‘조선부인의 허영(허영(虛榮))은 다른나라 녀자에비(비(比))해서 아조적슴니다 조선녀자의사치는 외국녀자에비하야 어림도업겟지요 그러나 우리는이것도 감당못할만한가련(가련(可憐))한 처디에잇슴니다 조선의 녀자되신분아모조록 쓰러저가는 조선의경제(경제(經濟))를조곰이라도 도와가시기를 바람니다여긔에는가계를밝히서서 사치를폐하고꾸준이 나가시는것이겟지요’ 적었다. 이 글은 1925년 일제강점기 신문 논설의 일부로, 조선 여성들이 외국 여성들보다 사치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조선의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우므로 작은 사치도 줄이고 가계를 알뜰히 꾸려 국가와 사회의 경제를 돕자는 계몽적 주장을 담고 있다다. 당시 언론에서 계가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둑은 오랜 세월 동아시아에서 발전한 문화인 만큼, 전통 한자어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에서는 '게이산(計算)'이라는 일반 표현도 쓰지만, 공식적으로는 계가에 해당하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중국 역시 집과 영토를 세는 개념을 중심으로 승패를 가른다. 한국 바둑계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계가라는 용어를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계가가 단순히 숫자를 세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숙련된 기사들은 계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략적인 집 차이를 읽어낸다. 그래서 프로 기사들의 대국에서는 대국 종료 직후 승부를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마추어에게 계가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순간이다. 예상보다 집이 적거나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승패가 뒤집히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전자 계가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계산의 정확성과 속도는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마지막에 '계가합니다'라는 말이 주는 묵직한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점수를 세는 행위가 아니라, 한 판 동안 쌓아 올린 전략과 인내, 선택의 결과를 확인하는 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계가라는 두 글자에는 바둑의 본질이 담겨 있다. 바둑은 상대의 돌을 많이 잡는 게임이 아니라, 결국 더 넓은 집을 만드는 게임이다. 그래서 바둑의 마지막은 언제나 돌이 아니라 '집'을 세는 일로 끝난다. 계가라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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