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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87] 당구에서 왜 ‘회전’을 ‘시네루’라고 말할까

2026-05-17 07:01

여자프로당구 전설 김가영이 큐로 조준하는 모습
여자프로당구 전설 김가영이 큐로 조준하는 모습
“시네루 너무 많이 줬네.” “그 공은 시네루가 살아 있었어.” 당구장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듣는다. 이는 당구공에 회전을 주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시네루’라는 단어는 표준 당구 용어가 아니다. 국제 규정 어디에도 없고, 영어 교본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당구장에서는 마치 공식 용어처럼 자연스럽게 쓰인다.

시네루는 일본어 ‘히네리(ひねり)’에서 변형된 말이다. 일본어 동사 ‘히네루(ヒネル)’는 ‘비틀다’, ‘꼬다’, ‘틀다’라는 뜻을 가진다. 당구에서는 큐볼을 비틀듯 쳐서 회전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일본 당구계에서는 회전을 뜻하는 영어 ‘english(잉글리시)’ 대신 히네리라는 표현이 널리 퍼졌고, 이 말이 한국 당구장 문화로 들어오면서 발음이 변형됐다. 히네리에서 시네리로, 또 시네루로 바뀌었던 것이다. 정확한 음운 변화는 지역과 세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당구장에서 구전되며 굳어진 생활어에 가깝다.

한국 당구 문화의 뿌리 상당 부분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특히 4구와 3쿠션 문화가 대중화되던 시절, 한국은 일본식 당구 용어를 대거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도 당구장에는 일본식 잔재가 많다. 당구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식 한자어이다. ‘당구대’를 ‘다이’, ‘공’를 ‘다마(球)’라고 부른다. (본 코너 1771회 ‘‘빌리어드(billiards)’를 왜 ‘당구’라고 부를까‘, 1779회 ‘왜 아직도 '당구공'을 ‘다마’라고 부를까‘, 1780회 ’왜 ‘당구대’를 ‘다이’라고 부를까‘ 참조)


당구에서 영어 english 의 어원도 꽤 흥미롭다. 원래 영어권 당구에서 english는 큐볼의 옆면을 쳐서 주는 ‘사이드 스핀(side spin)’을 뜻한다. english 유래는 19세기 프랑스 당구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영국 선수들이 큐볼에 옆회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플레이를 보여줬고, 프랑스 선수들이 그것을 보고 ‘anglais(앙글레=영국식’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 표현이 영어권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english가 회전 기술 자체의 이름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초기의 당구는 지금처럼 강한 회전을 쓰지 않았다. 당시 큐 끝은 단단한 나무였고, 가죽 팁도 발전하지 않아 옆면을 치면 미스샷이 나기 쉬웠다. 하지만 가죽 팁과 초크가 발전하면서 의도적인 회전이 가능해졌고, 영국 선수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english는 단순한 기술명이 아니라,‘영국식으로 비틀어 치는 방식’이라는 문화적 표현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건, 많은 고수들이 회전과 시네루를 미묘하게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다. 회전은 물리학적 표현이다. 하지만 시네루는 감각의 언어다. 당구는 단순히 공학이 아니다. 큐 끝의 탄성, 천의 마찰, 손목의 감각, 스트로크의 리듬이 섞인다. 그래서 당구장에는 유독 의성어와 체감어가 많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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