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조 시절은 강력한 마무리가 있기 전, 이미 리그를 압도하는 '선발 왕국'이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동열이 마무리로 활약하던 해태에는 조계현, 이강철 등 15승급 투수들이 즐비했고, 오승환의 삼성 역시 선발 전원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는 탄탄한 로테이션을 자랑했다. 심지어 2025년 LA 다저스가 사사키 로키를 포스트시즌 마무리로 깜짝 기용했던 사례조차 타일러 글래스나우, 야마모토 요시노부, 블레이크 스넬이라는 막강한 선발진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사치'였다.
반면 현재 LG의 선발진은 처참하다. 외국인 투수 치리노스는 평균자책점 7점대를 기록할 만큼 구위가 무너졌고, 토종 에이스 임찬규 역시 예년만 못하다. 송승기는 최근 3경기 연속 난타당했다. 이처럼 앞문이 뚫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계산 서는 좌완 선발인 손주영을 뒷문으로 돌리는 것은, 도둑이 안마당까지 들어왔는데 안방 문고리만 최고급으로 교체하는 격이다.
또한 "손주영이 마무리로서 빌드업과 구위, 멘탈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염 감독의 설명은 오히려 그가 왜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160이닝 이상을 책임지며 팀의 패배 확률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에이스를 고작 60이닝 남짓의 마무리로 쓰는 것은 명백한 자원 낭비다. 선발이 초반에 무너져 대량 실점을 허용한다면, 염 감독이 그토록 원하던 '확실한 마무리' 손주영은 등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불펜에서 몸만 풀다 경기를 마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내년을 준비하는 팀이 아니다"라는 발언 역시, 당장의 1승을 위해 팀의 미래이자 근간인 선발 자원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야구는 선발이 버티지 못하면 승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스포츠다. 확실한 선발 한 명이 간절한 마당에 팀 내 토종 에이스를 불펜으로 보낸 결정은 전략적 승부수가 아닌, 조급함이 낳은 실책에 가깝다. 뒷문의 안정은 앞문이 튼튼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다. 팬들이 잠실구장에 트럭까지 보내며 반대하는 이유는 감독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자칫 이번 결정이 손주영이라는 개인의 커리어를 망치고 LG 트윈스의 '지속 가능한 강팀'이라는 꿈을 붕괴시킬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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