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을 표방하며 ‘국민’ 대신 ‘인민’이라는 단어를 썼다. ‘인민군, 인민학교, 인민체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모든 명칭은 ‘노동하는 대중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담았다. ‘인민(人民)’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서경'과 '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이 결합된 이 단어는, 애초에 왕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백성을 뜻했다. 하늘이 덕 있는 자에게 명을 내리면, 그 덕은 ‘인민’을 향해야 한다고 고전은 말한다. 조선 시대에도 이 말은 왕의 시선에서 백성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인민을 편안케 하라”는 명령 속에서 ‘인민’은 보호받는 존재이지, 스스로 통치의 주체는 아니었다. (본 코너 1553회 ‘북한에선 왜 ‘인민체육인’이라 말할까‘ 참조)
일제강점기, ‘국민(國民)’이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을 뜻하던 시대에, 사회주의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인민’을 억압받는 대중의 이름으로 되살렸다. 북한이 해방 이후 인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이런 맥락을 고려한 것이다.
이학래 한양대 명예교수가 펴낸 ‘한국체육백년사’에 따르면 북한에선 광복 1주년을 경축하는 북한 최초의 종합체육대회가 1946년 10월6일 평양에서 개최됐다. 김일성은 이 대회에 참석한 체육인들에게 ‘체육을 대중화하기 위하려’란 제목의 연설에서 “민주조선을 건설할 씩씩한 건국 투사들을 키우기 위해여 인민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단련시키는 전인민적 체육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인민체육은 토지개혁, 산업국유화,노동법 제정 등을 통해 급격히 추진하게 된 개혁을 적극 뒷받침할 수 있도록 북한 주민들을 동원하는 이념적 도구 역할을 했다. 북한이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시작한 것은 1948년 9월9일 공화국 수립 경축 전국체육대회 이후였다. 북한은 정권 수립과 함께 행정기관, 노동당, 사회단체를 망라한 중앙조선체육지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민체육을 제도화하여 북한 체육의 기반을 구축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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