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19 김봉연과 읍참마속(泣斬馬謖)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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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4-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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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19 김봉연과 읍참마속(泣斬馬謖)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베다. 기강을 잡기위해 인재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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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호, 너 내일부터 4번 쳐”

김응용감독은 불쑥 한마디를 내뱉곤 휙 돌아섰다. 양승호는 감독의 뜬금없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리둥절하기는 옆에 있던 고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글쎄. 농담이겠지”

“우리 감독이 농담할 사람이야?”

“그건 그렇지. 그럼 우리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들은 이내 김 감독의 말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 선발오더를 본 후 모두 뒤로 자빠졌다. 양승호가 4번 자리에 떡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를 호위라도 하듯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김종모가 위아래 타순에 도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그대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양승호는 얼이 빠졌다. 선배들 뒷바라지나 하면서 심부름이나 해야 할 신인이 4번 타자라니 왜 안그렇겠는가. 4번도 4번이지만 하늘같은 선배들 눈치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4타수 무안타. 양승호 때문에 찬스가 번번이 무산되었다. 김봉연 등은 양승호가 한없이 쪼그라드는 걸 보면서 만면에 비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김응용이라도 그렇지, 감히 우리들을 빼고 신인에게 4번을 맡기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 아닌가.

감독의 어깃장 때문에 게임을 놓친 것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은 걸 모두 억지로 참았다. 오늘 결과로 곧 정상으로 돌아갈 텐데 괜히 미움 살 일을 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양승호가 4번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위아래에서 시중드는 역이었다. 첫 날 엉망이었던 양승호도 둘째 날은 안타를 2개나 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없어졌다. 양승호를 축으로 한 공격라인도 점차 힘을 쓰기 시작했다.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김준환. 모두 한방씩 쏘아 올릴 수 있는 해태 타이거즈의 대포들. 그래서 그들을 ‘김포 선봉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따로 떼어놓으면 천하무적인데 뭉쳐 놓으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럴까. 구심점이 없었고 저마다 큰 것 한방을 터뜨려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할 뿐 팀 플레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성한이 안타를 치고 나가면 김봉연은 어떻게든 김성한을 진루시켜야 한다.

야구는 개인 운동이기도 하지만 첫 공격과 다음 공격이 조화를 이루어야 득점을 하고 이길 수 있는데 그들은 그러질 않았다. 주자가 있든 없든 무조건 홈런을 치려했고 그러다 보니 이길 수 있는 경기도 놓치고 마는 것이었다.

1983년 새롭게 팀을 맡은 김응용 감독은 그들을 조련하지 않고는 해태의 우승도 없다고 보았다. 어떻게 해야 저들을 팀플레이 하는 순한 호랑이로 탈바꿈 시킬 수 있을까. 김감독은 ‘김 포’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갓 입단한 양승호를 4번에 밀어 넣어 그들의 목을 조여 나갔다.

‘김 포’들은 초조했다. 자기들 없이도 팀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안되겠다 싶었던 김봉연 등은 감독에 대해 불평하는 대신 훈련에 매달렸다. 후배들을 독려하며 열심히 뛰었고 필요하다 싶으면 자존심을 접고 번트까지 댔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김응용감독은 달라진 기를 꺾고 팀플레이를 하는 ‘김 포’들을 보면서 모든 걸 원위치 시켰다. 4번에 김봉연을 가져도 놓고 김성한, 김종모를 호위무사로 세웠다. 1개월 조련용이었지만 양승호는 덕분에 신인치곤 곧잘 쳐 많은 경기에 요긴하게 썼다.

한 달간의 김포 길들이기. 김응용 감독은 22홈런의 김봉연, 3할 5푼의 김종모, 3할 2푼 7리의 김성한이 서로 밀고 당겨준 덕분에 취임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어 내며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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