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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18 장명부의 금적금왕(擒賊擒王)

2020-04-14 00:02

[프로야구 손자병법] 18 장명부의 금적금왕(擒賊擒王)

-도적을 잡으려면 두목부터 잡아라

[프로야구 손자병법] 18 장명부의 금적금왕(擒賊擒王)


“제가 던지죠”

“안돼. 사흘 연속이나 어떻게 던지나. 그리고 내일 선발인데...”

“충분합니다. 기껏 2회 정도라서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한방이면 승부가 뒤집히는 상황. 삼미 슈퍼스타즈의 김진영 감독은 말은 안 된다고 했지만 더 이상 장고 할 수 없었다. 본인이 던질 수 있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1983년 8월 인천구장. 질질 끌려 다니던 MBC청룡의 방망이가 7회말 무섭게 터졌다. 5점차의 리드가 순식간에 1점차로 줄어들었고 베이스는 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2사였으나 타순도 상위타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역전될 게 뻔했다. 다 된 밥에 콧물 빠뜨리게 된 김진영 감독은 난감했지만 이미 4명의 투수를 동원한 터라 더 이상 올릴만한 투수도 없었다. 그 때 에이스 장명부가 등판을 자원했다.

더 할 나위 없이 반가웠지만 마냥 반가워 할 수만도 없었다. 실력은 믿을 수 있지만 이틀 전 선발로 나서 완투했고 어제는 2이닝을 마무리 했다. 내일은 또 선발로 예정된 상황이니 오늘 급하다고 선뜻 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지면 그 또한 낭패였다.

아닌건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김 감독은 장명부를 믿고 투입했다. 장명부는 큰소리 친 그대로 3구 삼진으로 급한 불을 끈후 9회 역시 깔끔하게 무실점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완투승을 했다.

연전연투의 장명부. 그는 그렇게 쉼 없이 등판하며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깨어지지 않은 한 시즌 30승을 작성했다. 당시 팀당 경기수는 100게임. 현재의 144게임이라면 50승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장은 그 30승을 위해 100경기 중 60경기에 나섰다. 44경기에 선발로 등판했고 36경기를 완투했다. 던진 횟수는 427과 3분의 1이닝이며 맞이한 타자는 1,712명, 타수는 1,559였다. 그 모두 아직도 깨지지 않은 시즌 최다 기록이다.

은퇴를 앞둔 34세의 장명부는 어떻게 그 같은 철인열전을 쓸 수 있었던가. 보너스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지만 나름의 요령이 확실하게 있었다.

시즌 초 구단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30승을 하면 1억원도 줄수 있다고 말했다. 결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던진 농반진반이었다. 하지만 장명부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장명부는 그 때부터 30승에 대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등판 기회만 오면 자진해서 뛰어나갔다. 구단 고위관계자는 그 말을 곧 잊어버렸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장명부에겐 의지말고도 30승을 올릴 수 있는 노하우도 확실하게 있었다.

“1번부터 9번까지 9명의 타자가 공격에 나서지만 역량은 모두 같지 않다. 1번은 빠르고 3번은 잘 치고 4번은 힘이 좋다. 7, 8, 9번은 그 팀에서 가장 타격이 약한 선수들이다. 내가 많은 횟수를 던지고 연투할 수 있는 것은 힘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중심타자와는 전력을 다 하지만 하위타자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9회를 완투한다고 해도 조심해서 상대하는 경우는 10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장명부의 전략은 간단했다. 공격 선봉장만 전력으로 상대하고 나머지는 슬슬 던지며 맞혀 잡는 것이었다. 장명부의 말대로 하면 9이닝을 던져도 실제 힘을 쏟는 것은 3이닝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도 힘쓰기가 다르다. 선두타자는 늘 조심해야 하지만 2사후라면 안타 1, 2개 맞아도 그만이다. 점수와 연결시키지 않으면 슬슬 던지며 맞혀 잡으면 된다.”

집중타만 맞지 않는다면 안타 좀 맞아도 승부엔 큰 영향이 없다는 말인데 장명부는 점수차가 많이 나는 경기의 후반부나 2사후엔 곧잘 안타를 허용했다. 그의 말이 사실인 게 1991년의 태평양 박정현과 1996년의 한화 이상목은 10안타를 맞고도 완봉승을 작성했다.

다른 건 그들은 어쩌다 그렇게 했지만 장명부는 모든 걸 계획한 후 가지고 놀았다는 점이다. 한일프로야구의 수준차도 한몫했지만 장명부는 그 고생을 하고도 약속했던 보너스를 다 받지는 못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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