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르겐 클린스만.
이미 평가가 끝났다고 여겨졌던 이름이다. 하지만 대표팀 논란이 커질 때마다 그는 다시 등장한다.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처럼, 혹은 분노를 정리하기 위한 표적처럼.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계속 과거의 이름을 다시 꺼내야 하는가.
여론의 흐름은 단순하다.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묻고 싶고, 그 책임을 구체적인 인물로 좁히고 싶어진다.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이 먼저 선택된다. 감독, 그리고 과거의 감독들. 그렇게 논쟁은 점점 사람 중심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반복될수록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감독은 바뀌지만 논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이름이 같은 방식으로 호출된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인물 교체'만 반복되는 구조가 된다.
홍명보도, 클린스만도 그 구조 안에 있었다. 다른 시기, 다른 조건이었지만 논쟁의 결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임 과정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고, 책임은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결과가 흔들리면 여론은 다시 다음 이름을 찾는다.
그래서 이 논쟁은 단순한 인물 평가로 끝나기 어렵다. 누구를 탓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같은 방식이 반복되는가의 문제다.
이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바꾸는 데 집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선임 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감독이 왜 선택됐는지,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가 결과 이후가 아니라 과정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둘째, 책임 구조가 명확해야 한다. 선임을 결정한 주체와 운영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모든 책임은 결국 감독 개인에게 집중된다.
셋째, 권한과 책임이 일치해야 한다. 전권을 부여한다면 결과 책임도 분산되지 않도록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평가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여론의 흐름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기준에 따라 성과가 판단되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감독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름은 계속 바뀌겠지만, 논쟁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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