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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60] 북한 농구에선 ‘드리블’을 왜 ‘곱침이’라고 말할까

2026-01-10 05:51

2023년 항조우 아시안게임 남북한 여자농구 경기.
2023년 항조우 아시안게임 남북한 여자농구 경기.
외래어 ‘드리블’은 영어 ‘dribble’을 발음대로 표기한 말이다. 축구나 농구 등에서 공을 몬다는 뜻으로 쓰인다. dribble은 ‘방울지다, 조금씩 떨어진다’는 의미인 고대·중세영어 동사형인 ‘dribben, driblen’이 어원이다. 16-17세기 근대 영어에서 dribble라는 단어로 사용했다. 스포츠 용어로는 19세기 축구·농구 등에서 공을 작은 터치로 계속 밀려 이동시키는 기술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큰 한 번의 움직임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접촉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였다. 이 뜻은 고어적 의미로 ‘액체가 조금씩 떨어진다’는 것과 연결된다. (본 코너 402회 ‘왜 드리블(Dribble)이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드리블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8년 5월17일자 ‘평양축구(平壤蹴球) 최종일(最終日) 동광(東光)(청년(靑年))일광(日鑛)(실업(實業))과 숭인상업(崇仁商業)(중등(中等))제패(制覇)’ 기사는 ‘후반(後半) 오분(五分)에 안주군(安州軍) LW금옥택군(金玉澤君)『드리블패스』한것을 0F전창환군(全昌桓君) 문전오미(門前五米)에서『슛』하엿스나 GK의선방(善防)으로 무위(無爲)▲십삼분(十三分)에 다시『찬스』잇섯스나범축(凡蹴)으로 월문(越門) ▲삼십분(三十分)에동광군(東光軍)『찬스』잇섯스나 RF의선방(善防)으로무위(無爲)’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드리블패스(dribble pass)’는 ‘드리블을 하다가 내주는 패스’를 의미하는 초기 외래어 복합어이다.

북한에선 종목에 따라 드리블을 다르게 표현한다. 축구에선 ‘몰고달리기’라고 하고, 농구에선 ‘곱침이’라고 말한다. (본 코너 1615회 ‘북한에선 왜 ‘드리블’을 ‘몰고달리기’라고 말할까‘ 참조)

북한 농구에서 곱침이는 여러번(곱) 공을 땅에 내려치는(침) 행동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곱치다’는 북한에서 어떤 동작을 연속적으로 되풀이한다, 손이나 도구로 위아래로 눌러 치거나 두드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농구에서 드리블은 공을 손으로 계속 눌러 바닥에 치고 다시 받는 동작이다. 북한식 시각에서는 이것이 공을 곱쳐 가며 이동하는 행위인 셈이다. 외래어 드리블을 음차하는 대신, 행위 자체를 설명하는 순우리말로 치환한 것이다.


이 같은 작명법은 북한 체육 용어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리바운드는 ‘판공잡기’, 어시스트는 ‘득점련락’, 더블 드리블은 ‘몰기실수’가 된다. 모두 기술 이름이라기보다는 기능과 결과를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다. 농구를 미학이나 개인기보다, 규칙에 따라 수행되는 집단적 행위로 인식하는 태도가 언어에 반영돼 있다. (본 코너 1652회 ‘북한 농구에선 왜 ‘어시스트를 ’득점련락‘이라 말할까’, 1653회 ‘북한 농구에선 왜 '리바운드'를 '판공잡기'라고 말할까’, 1655회 ‘북한 농구에선 왜 '더블 드리블'을 '몰기 실수'라고 말할까’ 참조)

특히 곱침이이라는 말에는 반복과 규율의 뉘앙스가 강하게 배어 있다. 남한이나 국제 농구에서 드리블은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공을 다루느냐를 평가받는 기술이지만, 북한 농구에서 곱침이는 ‘옳게’ 해야 할 기본 동작이다. 북한의 규정 문서나 해설을 보면 “곱침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곱침을 규정대로 하지 않았다”, “곱침 실수를 범했다”는 식의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쓰인다. 기술보다 질서를 강조하는 표현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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