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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53] 북한 농구에선 왜 '리바운드'를 '판공잡기'라고 말할까

2026-01-03 06:47

2018년 남북통일농구경기에서 '판공'을 잡은 북한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남북통일농구경기에서 '판공'을 잡은 북한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리바운드’는 영어 ‘rebound’를 음차한 말이다. 대표적인 농구 용어로 슛한 공이 바스켓에 들어가지 않고 튀어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rebound’라는 영어 단어는 다시라는 의미인 접두사 ‘re’와 튄다는 의미인 ‘bound’의 합성어이다. 본래 고대 프랑스어 ‘rebondir’에서 유래한 말로 뒤로 뛴다, 뒤로 밀다는 의미였는데 15세기초 영어에서 같은 의미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본 코너 404회 ‘왜 리바운드(Rebound)라 말할까’ 참조)
미국스포츠용어 사전에 따르면 리바운드를 스포츠 용어로 쓰게 된 것은 테니스에서 먼저였다. 농구에서는 1914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처음 농구를 창안했을 때는 리바운드라는 개념이 없었다. 초창기 농구에서는 골을 넣으면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 점프볼(Jumpball)로 공격과 수비를 결정했다. (본 코너 388회 ‘왜 점프볼(Jump Ball)이라 말할까’ 참조) 축구 킥오프(Kick Off)와 같이 양팀에게 대등한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본 코너 320회 ‘왜 킥오프(Kick Off)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리바운드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뜨라면 조선일보 1937년 1월7일자 ‘보전군(普專軍)은천엽(千葉)을일축(一蹴) 연전불의(延專不意)의패(敗)’ 기사는 ‘연전대경도제대전(延專對京都帝大戰)은 동이시이십분(同二時二十分)부터 이(伊)□ 대촌(大村)□씨심판(氏審判)아레 개시(開始)된바 연전군(延專軍)『벤터—정프』는 영(領)□ 유리(有利)하엿스나경대(京大)의『존·디펜스』에봉(封)□되여『□프·□』도여의(如意)치못합에반(反)하야 경대(京大)는 □하(下)의 『리바운드□』을 이용(利用)하야 연속득(連續得)□하야 전반(前半)에 이십오대십구(二十五對十九)로 연전부진(延專不振)하드니 후반(後半)에 드려가 연전아연긴장(延專俄然緊張)하야십사분(十四分)에 삼십삼대삼십삼동점(三十三對三十三同點)되엿다가 도리혀 경대(京大)를 누르고삼십륙대삼십오(三十六對三十五)의 일점차(一點差)로 연전일시우세(延專一時優勢)를 보이드니『타임업』□전(前)에 경대석천(京大石川)의 □□하(下)슛 성공(成功)하야 삼십칠대삼십육(三十七對三十六)으로 연전군(延專軍)앗가을게 □러섯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연희전문학교(延專)과 교토제국대학(京都帝大) 농구 경기 기사인데, 당시 신문체·외래어 표기 때문에 읽기 어렵고, ‘□’는 판독이 안 된 글자를 뜻한다. 기사에선 교토대가 골밑 리바운드를 활용해 연속 득점하며 전반을 25대 19, 연전의 부진 속에 마쳤다는 내용이 있다.

북한은 리바운드를 외래어로 부르지 않고 대신 ‘판공잡기’라는 말을 쓴다. ‘판공’은 말 그대로 바닥에 튀어 나온 공, 곧 림이나 판에 맞고 떨어진 공을 뜻한다. 여기에 ‘잡기’가 결합되면서, 판공잡기는 “튕겨 나온 공을 붙잡는 행위”가 된다. 영어 리바운드가 ‘되튀기다’라는 물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데서 출발했다면, 북한식 표현은 그 장면을 눈앞에 그리듯 직관적으로 옮긴 셈이다.

이 명명 방식에는 북한 체육 언어의 일관된 원칙이 담겨 있다. 북한은 스포츠 용어를 가능한 한 외래어 대신 우리말식 조어로 바꾸려 했다. 어시스트가 ‘득점련락’이고, 파울이 ‘규칙위반’, 자유투가 ‘벌넣기’인 것처럼, 리바운드 역시 기능과 동작을 설명하는 말로 재구성됐다. (본 코너 1647회 ‘북한 농구에서 ‘자유투’를 왜 ‘벌넣기’라고 말할까‘, 1652회 ’북한 농구에선 왜 ‘어시스트를 ’득점련락‘이라 말할까’ 참조)


흥미로운 점은 판공잡기가 단순한 언어 치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리바운드’가 기술적 요소로 인식되는 반면, ‘판공잡기’는 투쟁과 쟁탈의 뉘앙스를 강하게 띤다. 튀어나온 공을 먼저 잡아야 하는 행위, 즉 몸싸움과 적극성이 전제된 개념이다. 이는 집단성과 투쟁성을 중시하는 북한 스포츠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1930년대 조선일보 기사에서 이미 ‘리바운드’라는 외래어가 그대로 쓰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대비는 더욱 선명해진다. 식민지 시기 조선의 농구 언어는 일본을 경유한 영어 차용어에 의존했지만, 북한은 해방 이후 이를 의식적으로 걷어내고 자기식 언어 체계를 구축했다. 판공잡기는 그 상징적 결과물이다.

결국 판공잡기라는 말은 농구 규칙을 설명하는 용어를 넘어, 언어를 통해 스포츠를 자기화하려는 시도의 흔적이다. 북한 농구 언어는 공 하나를 잡는 순간에도 체제의 언어관과 세계관이 스며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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