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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49] 북한 농구에선 왜 ‘3점슛’을 ‘장거리넣기’라고 말할까

2025-12-30 07:08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농구 경기에서 북한 최장신 센터 리명훈(오른쪽)이 점프볼을 다투는 모습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농구 경기에서 북한 최장신 센터 리명훈(오른쪽)이 점프볼을 다투는 모습
농구에서 ‘3점슛’을 영어 ‘three point shot’를 직역한 말이다. 성공하면 3점을 얻는 던지기슛이라는 의미이다. 3점슛은 규칙이 곧 이름이 된 경우이다. 농구 초창기에는 슛은 모두 2점이었다. 그러나 경기의 단조로움을 줄이고 외곽 공격을 활성화하기 위해 장거리 슛에 가산점을 주는 규칙이 도입됐다. 1940~50년대 미국 프로리그에서 실험적 도입했으며, 1967년 미국농구협회(ABA)에서 공식 채택했다. 1979년 NBA에 정식 도입됐으며, 이후 국제농구연맹(FIBA)·올림픽 규칙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 언론은 1980년대부터 3점슛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85년 4월6일자 ‘새 농구 규칙 "3점슛"첫기록 경희대(慶熙大) 김재득(金才得)선수’ 기사는 ‘경희대 김재득(金才得)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3점짜리 슛의 첫득점자로 기록됐다. 새 농구규칙을 적용하며 5일 국민대체육관에서 개막된 제22회 춘계대학농구연맹전 첫날경희—서울대 첫게임에서 김재득(金才得)은 경기시작 1분만에 6·25m 밖에서 쏜 3점짜리 롱슛이 그대로 바스킷에 꽂히며 첫3점짜리 득점을 올린데 이어전반에 3점짜리 슛 2개를 성공시키고, 전보다 넓어진 코트에서 손영기(孫榮基)(20점)를 앞세워 속공으로 밀어붙여경희가 서울을83대39로 대파,1승을 올렸다’고 전했다. 당시 김재득이 성공시킨 슛은 6.25m 밖에서 던진 롱슛이었다. 이전까지라면 그저 ‘긴 거리에서의 슛’으로 기록됐을 장면이, 새 규칙의 도입과 함께 점수의 가치가 다른 슛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북한에서 3점슛은 ‘장거리넣기’라고 말한다. 북한은 해방 이후 외래어와 한자어를 줄이고, 뜻이 분명한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결과 ‘슛’은 ‘넣기’로, ‘three-point’는 규칙상의 숫자 대신 실제 행위의 특징인 ‘장거리’로 풀어 쓴 것이다. 장거리에서 던져 넣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장거리넣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숫자보다 동작을 중시하는 표현 방식이다. ‘3점슛’이라는 말은 규칙을 알아야 의미가 완전히 전달된다. 반면 ‘장거리넣기’는 농구 규칙을 몰라도 장면이 떠오른다. 멀리서 공을 던져 골에 넣는 모습이 말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는 스포츠 용어에서도 직관성과 설명성을 중시하는 북한식 언어 감각을 보여준다.

여기에 군사·노동 문화의 언어적 영향도 작용한다. 북한 체육 용어에는 ‘돌파’, ‘공격’, ‘방어’ 같은 전투적 어휘뿐 아니라 ‘장거리’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장거리 사격, 장거리 행군처럼 ‘장거리’는 정확성과 숙련을 상징하는 말이다. 3점슛을 장거리넣기라 부르는 것은 이를 단순한 득점 수단이 아니라, 고난도의 기술이자 전술적 행위로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장거리넣기는 숫자를 버린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 이전의 몸짓과 공간 감각을 되살린 말이다. 남한의 3점슛이 제도와 규칙의 언어라면, 북한의 장거리넣기는 동작과 거리의 언어다. 3점슛과 장거리넣기라는 말 속에는 서로 다른 사회의 시선과 언어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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