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경기에서 한국 선수의 태클을 피하는 북한 선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20608080000432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우리말에서는 중국 지명 의미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었다. 문학·언론에서는 점차 “한 조직이나 현상의 중심 공간”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축구 미드필드를 ‘중원’이라 부르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일제강점기 때부터 중원은 스포츠 용어로 쓰였는데, 1970~80년대 한국 축구 해설·언론 등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중앙·중심부’라는 전술적 상징성과도 잘 맞아 용례로 굳어진 것이다.
영어 ‘midfield’는 가운데를 뜻하는 미드(mid)와 운동장을 뜻하는 필(field)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운동장 가운데라는 의미이다. 센터 서클(Center Circle)을 중심으로 경기장 중앙 부분을 말한다. 미드필드는 고대어에서 전래된 말이 아니라, 영어의 단순 조합(compound word)으로 생긴 직설적 공간용어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축구 전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본 코너 310회 ‘미드필더(Midfielder)를 왜 ‘중원(中原)의 지휘자’라고 부를까‘ 참조)
북한에선 미드필드를 ‘중원’ 대신 ‘중간선’이라 부른다. 북한은 중원·미드필드·하프라인 같은 외래형 또는 한자 스포츠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경기장을 앞·뒤·좌·우로 공간화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골 에어리어’를 ‘문앞지대’, ‘페널티 아크’를 ‘벌점지대 곡선’, ‘사이드라인’를 ‘옆선’ 등으로 말한다. 미드필드를 중간선이라고 말한 것은 단지 선(line) 이름이 아니라 그 선을 중심으로 한 ‘중간 지역’ 전체라는 의미이다. 북한 해설자들은 중간선에서의 치열한 공방”, “중간선 전개가 원활하지 않다”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중간선 싸움은 남한에서 말하는 중원 주도권과 같은 뜻이다.
북한이 ‘중원’ 대신 ‘중간선’을 쓰는 배경에는 단어 하나의 취향 차이를 넘어, 언어정책·문화정치·스포츠 인식의 조합이 놓여 있다. 해방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북한 스포츠용어에는 노동, 집단, 자주, 인민이라는 사회주의의 네 가지 핵심 가치가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스포츠를 ‘놀이’가 아닌 ‘노동적 단련’으로 본 시각이 뚜렷하다. 이에따라 반제국주의적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외래어를 철저히 배격한다. 골프는 ‘잔디공치기’, 농구는 ‘바구니공던지기’, 탁구는 ‘공탁구치기’라 한다. 영어식 용어가 들어오면 “제국주의 사상 침투의 통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칭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자연과 생활 속의 언어로 스포츠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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