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배구에서 여러 선수가 패스와 움직임을 엮어내는 전술을 우리는 흔히 ‘콤비네이션 플레이’라 부른다. 콤비네이션은 영어 직역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 축구에 자리 잡은 표현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컴비네이션’ 등과 함께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3년 12월28일자 ‘「리드」보람없이 역전(逆轉)한분전(奮戰)’ 기사는 ‘【뉴델리26일발(日發)AP=동화(同和) 한국(한국(韓國))남자배구「팀」은 26일「도오꾜·올림픽」「아시아」지억배구예선에서「파키스탄」남자배구「팀」을 3대1(15—10 15—105—15 15—3)로 제압하고 4전4승의 전적을거두어 우승의길을 줄달음질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여자「팀」 은동예선 여자부의 사실상의결승전인 북괴(북괴(北傀))여자「팀」과의 대전에서 3대0(15—13 15—12 15—7)으로졌다.이날밤 75분동안계속된 한국여자대 북괴여자의「게임」은 불을뿜는듯한 일대열전이었다. 이날밤 한국여자「팀」은제1「세트」초반에서는 4—1로「리드」했으나 그후북괴의추격앞에역진당했다.「파이트」에 넘치는 한국「팀」은 즉시 추격을벌려5—5 9—9 13—13으로세번이나「타이」를이루면서「시소·게임」을 벌렸으나마침내 패배하고말았다. 제2「세트」에서 북괴「팀」은 4—1로「리다」를 잡았으나 한국「팀」은 곧4—4「타이」를 이루면서곧 북괴를 앞질렀다.한국「팀」의「리드」도 순식간에 역전되었다.한국「팀」의 미숙한「서브」와 위기에있어서의「콤비네이션」실패등은 한국「팀」이 제2「세트」에서도 진요인이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특히 주목할 문장은 ‘한국 팀의 미숙한 ‘서브’와 위기에 있어서의 ‘콤비네이션’ 실패 등은 한국 팀이 제2세트에서도 진 요인이 되었다‘이다. 여기 등장하는 ‘콤비네이션’은 당시 스포츠 기사에서 아주 널리 쓰이던 용어였다. 콤비네이션은 일본어 ‘コンビネーション’에서 온 차용어였다. 당시에는 이 단어를 우리말로 치환할 문제의식이 거의 없었다. 스포츠가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영어식 전술 용어가 오히려 ‘근대적’이고 ‘기술적’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말을 ‘협동전(協同戰)’이라는 한자어로 부른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언어 정화’와 ‘우리말 다듬기’를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다. 외래어를 체계적으로 제거하면서 스포츠 용어도 빠짐없이 재편되었다. 골키퍼는 ‘문지기’, 수비수는 ‘방어수’, 코너킥은 ‘모서리뽈’, 프리킥은 ‘벌차기’가 됐다. 콤비네이션도 당연히 외래어로 남겨둘 수 없는 대상이었다. 북한식 번역의 기준은 단순했다. 기능을 그대로 드러내고, 집단적 의미를 강화하는 것. 그 결과가 ‘협동전’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1604회 '북한에선 왜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말할까', 1605회 '북한에선 왜 ‘수비수’를 ‘방어수’라고 말할까', 1606회 '북한 축구에서 왜 ‘코너킥’을 ‘구석차기’ 또는 ‘모서리뽈’이라 말할까', 1607회 '북한에선 왜 ‘프리킥’을 ‘벌차기’라고 말할까' 참조)
‘협동전’이라는 단어는 군사적 뉘앙스가 짙다. ‘전(戰)’이라는 단어는 북한 스포츠 담론에서 전술·전법을 뜻하는 접미사이지만, 그 기저에는 싸움과 전투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북한 축구 기사에서 ‘협동전을 벌리였다’, ‘협동전의 위력이 과시되였다’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창의보다 집단의 통일된 움직임, 기술보다 조직적 ‘작전 수행’이 우선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여기에 스며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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