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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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20] 북한 축구에서 왜 ‘헤더‘를 ’머리받기‘라고 말할까

2025-12-01 07:49

 북한 축구 선수들이 헤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 축구 선수들이 헤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축구에선 한때 ‘헤딩(heading)’은 표준처럼 쓰이던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 ‘헤더(header)’가 빠르게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스포츠 언어가 국제 표준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흐름이다.

축구 용어에서 ‘heading’과 ‘header’는 엄연히 다른 용어다. ‘heading’은 ‘머리로 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명사형이고, ‘header’는 ‘머리로 맞힌 공’, 즉 슛이나 클리어링 같은 ‘결과물’을 뜻하는 명사형이다.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헤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였다. 반면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동작 중심의 헤딩을 기술명처럼 굳혀 사용해왔다. 한국식 용어를 오랜 시간 굳혀버린 셈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3년 5월9일자 '평양(平壤)스포—츠계(界) ·종(縱)·횡(橫)·관(觀)· 【삼(三)】' 기사에서 '좌익길(左翼吉) 락영군은 『틤』의 주장(主將)으로 작년(昨年)의 경험(經驗)을 가지고잇스나 『스피드』여드고 기술(技術)에 잇서서도 이러타할 무엇이업다 압흐로 진보(進步)잇기를바란다 우익장(右翼張) 긔호 군(君) 공격대중(攻擊隊中)에서 제일(第一)로 『헤딩』에 능(能)하나 장군 역시 길군(張君亦是吉君)과 가티 『스피드』에 약(弱)함이렴려다 우선공금(右先攻金) 일선군(君) 좌선공박(左先攻朴)영준군양군(君兩君)고디강축자(强蹴者)로 그들의 활동(活動)은 주목(注目)되나 더욱이 우선공김군(右先攻金君)의 『스피드』로서 좀더 연습(練習)만 되면히고 희망(希望)이 만타'고 전했다. 우익수(오른쪽 윙) 장기호군이 공격수들 가운데 헤딩(머리로 치는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된다는 내용이었다.

국제 기록 용어에서 슈팅의 한 유형은 명확히 ‘header’로 정의된다. “header goal”, “powerful header”, “headed clearance” 같은 표현들이·프리미어리그 중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국내 해설자들도 자연스럽게 헤더라는 용어를 다시 들여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축구 언어가 그대로 국내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북한 축구에선 헤더를 ‘머리받기’라고 부른다. 머리(신체 부위)와 받기(충돌해 맞받는 동작)를 결합해 만든 말이다. 이 표현은 북한식 축구 기술 체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북한의 축구 해설이나 체육 기사에는 ‘차기’, ‘넘기기’, ‘몰기’, ‘끊기’, ‘내던지기’처럼 동작을 모두 ‘동사 + -기’ 꼴로 통일해 표현하는 독특한 규범이 존재한다. 이는 스포츠 기술을 일종의 노동 동작처럼 분류하는 북한식 언어 조직의 산물이다. 머리받기는 이 규칙 아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편입되었다. 외래어를 걷어내고, 신체의 움직임을 그대로 드러내며, 기술 체계 내부의 문법적 통일성까지 확보하는 일거삼득의 선택이었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참조)

북한 매체는 “득점을 결정짓는 머리받기”, “높이 떠오르며 머리받아 련속 공격을 들이댔다”와 같이 보도한다. 문장들은 북한 해설의 특유의 사실적 묘사와 잘 어울린다. 남쪽의 ‘헤딩슛’, ‘헤딩 클리어’ 같은 숙련된 전문용어 대신, 동작의 기초적 물리성을 강조하는 것도 북한 체육 언어의 일관된 색채다.

결국 머리받기라는 단어에는 북한의 언어정책, 민족어 정체성, 그리고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겹겹이 얽혀 있다. 남측 용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색하고 투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북한 사회에서는 헤딩보다 더 논리적이고 더 ‘우리말다운’ 표현인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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