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이메이커는 ‘play(경기·플레이)’와 ‘maker(만드는 사람)’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플레이를 만든다(make plays)”는 동사구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말이다. 기계 설계자나 음악가가 아니라, “결정적 플레이를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연극에선 극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 축구에선 공격을 설계하는 선수, 농구에선 공격을 조율하는 가드 등의 의미로 쓰였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먼저 ‘찬스메이커’라는 말을 쓰다가 플레이메이커라는 말을 바꿔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7년 9월24일자 ‘한국(韓國),태(泰)눌러 3연승(連勝)’ 기사는 ‘한국(韓国)은 23일 속개된 제4회 아시아남자농구(篭球)선수권대회 3일째 경기에서 방콕아시아대회의 숙적 태국(泰国)을 85대57로 크게제압,방콕에서 받은 설움을 풀었다. 약 7천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날경기에서 한국(韓国)은 신동파김무현(申東坡金武鉉) 김영일(金永一) 이인표(李仁杓) 김인건(金仁鍵) 베스트 5명으로 스타트,신동파(申東坡)의 중거리 슛골인을 신호로 리드를 움켜 잡았다. 철(鉄)의 존 디펜스를 굳한 한국(韓国)은 김인건(金仁鍵)의 골밑 슛,신동파(申東坡)의 사이드 점프 슛이 호조,리바운드를 거의 독점하면서 11분 14대6,13분18대8로 계속리드,태국(泰国)은분총웡 와일러트를 포스트에세워 세트플레이로 한국(韓国)의디펜스를 교란하려 했으나무위—다시 한국(韓国)은 최종규박한(崔鍾圭朴韓)등 장신을 기용한후 기습적인 프레싱 작전을 펴15분에 37대22 까지 벌리다가 전반 41대30으로 끝냈다. 후반들어 한국(韓国)은 제2진을 고루 교체하면서 여유있는 플레이,김무현(金武鉉) 이인표(李仁杓)의 철저한 인터셉트로 태국(泰国)의 오펜스를 무기력하게만든반면,태국(泰国)은 13분 찬스메이커 솜 플리안사네가 5반칙 퇴장당한데다 한국(韓国)의강한 존 디펜스를 뚫지못해패하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 안에서 등장하는 ‘찬스메이커(chance‐maker)’라는 표현은 훗날 정착하는 ‘플레이메이커(playmaker)’와 비교할 때, 당시 한국어·일본어·영어 스포츠 언어가 혼재하던 과도기적 용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북한에선 플레이메이커를 ‘조률형 중간방어수’라고 다르게 부른다. 이 단어는 리듬을 조정하고 흐름을 통제하는 방어수라는 뜻이다. 북한 축구는 각 포지션을 공격·수비로 나누는 대신, 모든 선수를 ‘방어수’라고 말하며 그 위치에 따라 앞·중간·뒤로 구분한다. 이는 소련과 사회주의권 축구에서 기원한 전술 분류 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본 코너 1603회 ‘북한에선 왜 ‘미드필더’를 ‘중간방어수’라고 말할까‘, 1605회 ’북한에선 왜 ‘수비수’를 ‘방어수’라고 말할까‘ 참조)
방어수에 ‘조률형(調律型)’이 붙은 것은 경기라는 거대한 기계의 속도와 규칙성을 유지하는 조정자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에는 창의성보다 조직의 리듬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조률형 중간방어수는 개인의 창의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집단적 공격과 방어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조직의 엔진을 의미한다.
북한 신문에서는 종종 “경기 조률이 능한 중간방어수 ○○○ 선수의 련결공격이 빛났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때의 ‘조률’은 단순한 패스가 아니라 팀 전체의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남한이 유럽 축구에 가까워지며 용어를 통째로 차용한 것과 달리, 북한은 포지션 이름부터 역할을 설명하는 해설식 구조로 만들었다. 용어가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플레이 스타일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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