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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453] 북한에선 왜 하키를 ‘호케이’라고 말할까

2025-06-10 06:43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아이스하키 여자 남북한 단일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아이스하키 여자 남북한 단일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기홍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무처장은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북한 체육 관계자와 자주 만나면서 북한 스포츠 용어 때문에 소통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호케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당황했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북한에서 하키를 ‘호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북한 선수단의 설명을 듣고 나중에야 알게됐다. 북한에선 아이스하키를 ‘빙상호케이’라고 부른다. 아이스를 뜻하는 말로 한자어 ‘빙상(氷上)’을 쓰고, 하키를 ‘호케이’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빙상호케이’는 얼음 위에서 하는 하키라는 뜻이다.

북한이 스포츠 용어에서 우리와 다른 말을 쓰는 것은 이른바 문화어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화어는 평양말을 중심으로 한 노동 계급의 이상과 생활 감정에 맞도록 규범화한 북한의 공용어이다. 문화어는 우리의 표준어에 해당하는 북한식 표현인 것이다. 1966년 김일성의 담화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 데 대하여’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기본적인 발상은 남한의 표준어로부터 독립된 공용어를 가져 ‘주체성을 구현하는 민족어를 육성’하려는 데 있었다. 북한은 외래어를 들여올 때 고유의 발음 규칙과 체계에 따라 표기한다. 북한에서는 외래어도 가능한 한 조선어 음운 구조에 맞추어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문화어 규정에 의거해 소련과의 오랜 정치·문화적 관계 속에서 러시아어를 많이 받아들였다. 외래어를 사용할 때, 영어보다 러시아어 발음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키를 러시아식 발음인 ‘호케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 ‘hockey’는 러시아어로 ‘хоккей (khokkey)’ 라고 쓰며, 발음은 ‘호케이’에 가깝다. 하키는 영어식 음운 구조이지만, 북한은 직역에 가까운 방식으로 ‘호케이’로 변형한 것이다. 카누를 러시아식 발음법에 따라 ‘커누’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본 코너 1445회 ‘북한에선 ‘카누’를 왜 ‘커누’라고 말할까‘ 참조)

남북한은 외래어 정책에서 차이가 있다. 남한은 외래어 표기에 있어 국제음성기호(IPA) 및 원어 발음을 최대한 반영하려 한다. 이에반해 북한은 자국의 어문 규범에 맞춰 표기하며, 종종 러시아어나 일본어에서 전래된 형태를 사용한다.


남북한은 역대 스포츠 교류를 하면서 단일팀 명칭도 달리 사용했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연합팀 구성을 할 때, 팀명칭을 놓고 남북한은 각기 다른 명칭을 썼다. 남한은 단일팀, 북한은 유일팀으로 불렀던 것이다. 남한이 쓴 단일팀은 ‘단일(單一)’이라는 한자어와 영어 ‘팀(team)’의 합성어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단일’이라는 말이 32회나 검색돼 오래전부터 써왔던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쓴 ‘유일팀’은 ‘유일(唯一)’이라는 일본식 한자어와 영어 ‘팀’의 합성어이다. 유일은 오직 하나라는 의미로 ‘유일무이(唯一無二)’라고 말 할 때 쓰는 말이다. (본 코너 1003회 ‘남한은 ‘단일팀’, 북한은 ‘유일팀’이라고 각기 다른 말을 쓴 까닭‘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1970년대 이후 북한 스포츠 용어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83년 9월1일자 ‘북괴(北傀),스포츠 용어(用語)도「조어(造語)」’ 기사는 ‘언어를「사상교환의 중요한 수단이며 혁명과 건설의 강력한 무기」라고 규정,평양말을 중심으로 한소위「문화어」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북괴(北傀)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있는 각종 스포츠용어까지 인위적으로 조어,오히려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북괴의 이러한 스포츠용어의 인위적인 조어는▲한글로 표기하기 곤란한 외래어를 억지로 꿰맞춘것과▲영어로 표기된명칭을 소련식발음으로 바꿔 부르는것으로 크게 나누어지고있는데 최근 북괴(北傀)선전기관들에의해 밝혀진 북괴(北傀)의 기발한(?)스포츠 용어들을소개하면—.ㅜ▲곧추치기=권투의 스트레이트▲돼지보총사격=사격의러닝보어▲먼저차기=축구의 선축▲누운헤엄=배영▲연락수=주로 배구의 세터를 일컫는말▲물에뛰어 들기=다이빙▲호케이=하키▲뺄헤엄=수영의자유형. 북괴는 또 경기의 내용이나 승패를 소개할때에는『타승(타승(打勝))했다』,『치밀한 타격』,『원쑤를 족치는 방법』등으로 극렬한 용어들을 구사,북한주민들의 호전성고취에 이용하고있다. 【내외(内外)】’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하키’를 ‘호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발음 차이가 아닌, 러시아어 기반의 언어 정책과 문화어 체계, 그리고 이념적 언어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남북 스포츠 교류 시에도 언어적·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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