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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밴쿠버에서 즉위하다-겨울올림픽 4

2022-02-05 06:34

김연아는 ‘불가능’의 한 종목을 가능으로 돌렸다. 그래서 전인미답이고 전설이다.

퀸, 밴쿠버에서 즉위하다-겨울올림픽 4
체육계에선 오래전부터 ‘한국이 죽어도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세가지’를 이야기했다.

첫 번째가 육상100m이고 두 번째가 수영100m이며 세 번째가 피겨 스케이팅이었다.

피겨 불가능론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종목상 특성 탓. 때문에 김연아가 주니어 시절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음에도 모두들 인정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니어에선 곧잘 하지만 시니어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실제 김연아 이전에 그런 사례들이 없지 않았다.

김연아는 2004년 국제대회 첫 무대인 주니어 그랑프리 2차 헝가리 대회에서 우승했다. 프리 101.32점으로 프리 100점을 넘은 첫 주니어 여자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2004-05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에 뒤져 은메달을 땄고 2005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역시 아사다 마오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2007 세계선수권대회는 명과 암이 교차했다. 쇼트에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완벽하게 성공하며 71.95점의 여자 싱글 쇼트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프리 스케이팅에서 실수를 하며 5위, 최종 성적은 3위였다.

프리 성적이 좋진 않았으나 김연아의 천재성은 이때 이미 알려졌다. 그것을 입증하듯 김연아는 2007-08, 2009~2010 그랑프리 파이널를 연이어 제패하며 그랑프리 3연패 기록을 세웠다.

김연아의 올림픽 여왕 길은 2009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이미 완성되었다.

2009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김연아가 만들어낸 점수는 76.12점. 프리에서 클린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131.5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획득, 총점 207.71점을 올리며 세계선수권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는 총점 200점을 돌파하고 프리 스케이팅 구성에서 8점대를 받은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김연아는 예고된 ‘여왕 즉위식’을 가졌다.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 방송의 해설자 톰 해먼드 캐스터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라고 외쳐 퀸의 등극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래서 김연아는 동시대의 선수보다는 피겨 여왕의 역사를 쓴 미셀 콴, 카타리나 비트와 자주 비교되었다.

김연아는 올림픽 쇼트에서 기술 점수 44.70점, 구성 점수 33.80점으로 총점 78.50점을 기록, 1위에 올랐다.

기술점수에서 9.8의 가산점,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와 스파이럴 시퀀스에서 2점의 가산점을 받았다. 78.50점은 쇼트 세계기록.

프리는 더 뛰어났다. 기술점수 78.30점과 구성점수 71.76점, 총점 150.06점이었다. 이 역시 세계신기록이고 쇼트와 프리를 합한 합계 총점 228.56점 역시 세계신기록이다.

총점 220점을 넘은 최초의 여자 싱글 선수 김연아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이의의 여지가 없었다. 아사다 마오가 2위를 했지만 점수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곳에 김연아는 올라가 있었다.

피겨 스케이팅 최초의 그랜드슬러머(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인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했다.

올림픽 전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후배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나섰던 김연아가 그 후배 박소연, 김해진과 함께한 두 번째 올림픽이었다.

대부분의 예상은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였다. 그러나 주최국 러시아의 피겨 금메달에 대한 욕심 탓에 어쩌면 2연패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함께 제기되었다.

우려했던 대로 결국 편파 판정이 이어졌고 김연아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김연아의 우승을 이야기했지만 판정은 이미 끝났고 김연아도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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