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그쯤 하니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그 즈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긴 시즌을 보다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내가 욕심을 부렸고, 경기 후에도 남아서 운동을 하며 내일을 바라봤다.” 그만큼 남윤성은 운동에 대한 남다른 욕심을 자랑했고,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서 육체적으로 좋은 몸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오버페이스’에 대한 결과는 후반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것이 남윤성의 가치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그는 2009시즌을 9승 1패, 평균자책점 3.77로 마감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약속했다.
귀국과 고양 원더스 합류, 그리고 ‘남윤성의 새로운 도전’
2009년 활약에 고무된 남윤성은 이듬해부터 하이-싱글 A로 승격되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블 A 승격도 가시화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이 때 문제가 발생했다. 전년도 후반기부터 좋지 않았던 어깨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남윤성은 “솔직히 정말 영리하지 못했다.”라고 부상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하려고만 들었다. 그걸로 된다는 생각에 오프시즌에도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운동만 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못 이겨내더라. 그래서 2009년 이후 3년 내내 시즌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고, 스프링캠프도 소화하지 못했다. 2011시즌을 앞두고는 한때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남윤성의 진심이다.
실제로 그는 재활 과정에서 승격 시합을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어깨 통증을 느꼈다. 주사를 맞고, 두 달 동안 재활을 했지만, 로우-싱글 A 첫 경기에서 또 다시 일이 터졌다. 팔을 풀다가 어깨가 안 올라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남윤성은 그대로 애리조나 루키리그로 내려가 팀 닥터를 만났다.
“당시 팀 닥터가 재활과 수술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더라. 그때 난 수술에도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여 주저 없이 수술을 선택했고, 수술 결과 어깨 뒤쪽 부분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재활뿐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 낸 만큼, 텍사스에서도 조금 더 기다려 줄 경우 내일의 좌완 에이스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텍사스 마이너리그에는 투수 유망주가 너무 많았다.
“2012년 1월 3일이다. 그때 방출 통보를 받았다. 구단에서 수술도 시켜 줘서 나름대로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텍사스에 감사해야 했다. 아파서 잘 못 던지는 선수를 오랜 기간 기다려줬다는 것만으로도 큰 미련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올 준비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 프로야구였다.
“기사에도 몇 번 났지만, 니혼햄과 요미우리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당시 수술을 마치고 재활한지 4개월이 채 안 되는 시점이어서 몸이 100%는 아니었다. 또한, 니혼햄과 요미우리가 즉시 전력감을 원했기 때문에, 나의 투구 내용에 만족하지는 못했다. 결국 일본 프로야구 진출은 없던 일이 됐고, 나는 더 이상 군 문제를 미룰 수 없어 빨리 귀국해야 했다.” 그렇게 짧고 굵은 추억은 남윤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양 원더스는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이에 그도 정영일(SK, 현 상무 복무)과 함께 ‘고양 원더스 1기 멤버’로 간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에서 제정한 ‘해외 진출 선수, 2년간 국내 복귀 금지’ 규정에 걸렸다. 기껏 입단을 하고도 프로 2군 초청 경기에는 정작 투입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성근 감독도 “누구를 위한 규약이며, 정식 경기가 아닌 초청 경기에서까지 그 규약을 적용하는 것은 억지”라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에 투입되지는 않았어도 남윤성은 세상 탓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찾는 데 노력했다.
“사실 원더스에 있던 1년 간 김성근 감독님 휘하에서 정말 잘 배웠다. 그래서 힘들어도 정말 야구가 재미있었다. 김 감독님 외에도 여러 일본인 코칭스태프, 김광수/이상훈 코치님께도 많은 것을 배워 참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남윤성의 진심이다. 그렇게 원더스에서 몸을 만들었던 남윤성은 2013년 시즌 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하여 퇴단을 결심했고, 그 해 7월에 공익 근무 요원으로 배치되며 군 복무와 재활을 병행했다.
“일부에서 내가 현역 입대를 했다고 잘 못 알고 있더라(웃음). 수술을 한 어깨 때문에 공익 근무 요원 판정을 받았다. 현재 김포에 있는 통진중학교 특수학급에서 복무중이다. 수술한 어깨는 재활이 순조로워 현재 100%다. 사실, 텍사스에서 나오고 나서야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즐겁게 야구 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래서 남윤성은 짧지 않은 미국 생활에서 인생을 배워 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진출로 인하여 알게 됐던 사람을 얻었다는 점에 더 큰 감사함을 느낀 그다.
“미국에서 기다릴 줄 아는 방법을 알아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처음으로 야구 글러브와 야구공을 잡았을 때처럼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대로 남윤성 본인도 현재 몸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내년을 바라본다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짧지만 강렬했던 미국 생활을 토대로 국내에서 좋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프로필 -
성명 : 남윤성(개명 전 ‘남윤희’)
신체조건 : 191cm, 94kg
소속 : 신일고 - 텍사스 레인저스 - 고양 원더스
유형 : 좌투좌타
빠른 볼 최고 구속 : 92마일(약 147km)
구종 : 포심 페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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