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난은 잠시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과거 한 감독이 타이틀 밀어주기를 두고 한 말처럼, KBO리그엔 시즌 막판 개인 기록을 위해 승부를 외면한 장면이 적지 않았다. 1984년 삼성은 타격왕을 다투던 이만수를 위해 롯데 홍문종을 마지막 2연전에서 9연타석 고의4구로 걸렀다. 1992년 빙그레는 6-0으로 앞선 5회, 4회까지 무실점이던 한희민을 다승 경쟁 중인 송진우로 바꿔 승리 요건을 챙겨줬다.
2009년 LG는 타율 1위 박용택을 빼고 0.002 차 2위 홍성흔(롯데)을 4연타석 볼넷으로 내보냈다. 타격왕에 오른 박용택은 거센 비판에 시달렸고, 2022년 당시 자신이 졸렬했다고 스스로 사과했다.
담합 의혹도 있었다. 1988년 MBC 김상훈은 김성래(삼성)에 0.002 앞선 채 마지막 3경기에서 번트 안타 4개로 타격왕에 올랐고, 1989년 삼성 강기웅은 MBC와 더블헤더에서 번트 안타 3개를 연달아 쳐 빈축을 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팬들의 목소리가 커진 2010년대 이후 노골적인 밀어주기는 사라졌지만 기록 집착은 여전하다. 최다 안타 경쟁 중이던 kt 최원준은 볼넷을 얻고 배트를 던졌다가 주장 장성우에게 꾸지람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에 잡혔다.

올해는 정반대 장면도 나왔다. KIA 2년 차 박재현은 12일 LG와의 최종전 1회 시즌 19호 홈런을 쳤다. 21도루를 기록 중이라 홈런 하나면 야구 인생에 몇 번 없을 20-20이었다. 3회 뜬공, 5회 땅볼에 그친 그는 2-2로 맞선 8회말 마지막 기회에서 존 케네디의 초구에 기습 번트를 대고 전력 질주해 1루에 살았다. 흔들린 케네디에게서 김도영이 결승 투런을 뽑아냈고, KIA는 4-2로 이겨 LG를 1경기 차로 따돌리고 3위를 확정했다.
2위 삼성의 박승규도 4월 10일 NC전에서 3루타, 단타, 홈런을 친 뒤 4-4로 맞선 8회 2사 만루에서 중견수 키를 넘겨 주자 셋을 모두 불러들였다. 2루에 멈추면 사이클링히트였지만, 팀 승리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 3루까지 달렸다. 그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했다.
1루로, 3루로 내달린 두 선수의 질주는 기록 대신 감동을 남겼다.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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