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9(수)

스포츠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79] 장기에서 왜 ‘졸(卒)’이라 부를까

2026-08-19 07:34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79] 장기에서 왜 ‘졸(卒)’이라 부를까
우리말에 ‘졸’짜가 들어가는 표현이 있다 ‘졸개’, ‘졸병’, ‘졸부’ 등이다. 지위가 낮은 부하나 하찮은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들이다. 장기판에서 졸이라고 하면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존재를 낮잡아 이르는 느낌이 든다. 차, 포, 마, 상, 사처럼 제법 근사하고 힘 있어 보이는 이름들 사이에서 졸은 어딘가 초라하게 비쳐진다. (본 코너 1875회 ‘장기에서 왜 ‘차(車)’라고 부를까‘, 1876회 ’장기에서 왜 ‘마(馬)’라고 부를까‘, 1877회 ’장기에서 왜 ‘상(象)’이라고 말할까‘, 1878회 ’장기에서 왜 ‘사(士)’라고 부를까‘ 참조)

‘졸(卒)’이라는 말 자체의 어원을 보면, 꽤 오래된 한자어이다. 卒(졸)의 본래 뜻 가운데 하나가 ‘군사, 병사’이다. 고대 중국에서 군대의 말단 병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래서 장기에서는 군대의 최전선에 있는 보병을 졸(卒)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반대편 진영의 같은 기물은 ‘병(兵)’이라고 하는데, 역시 ‘병사’를 뜻한다. 졸이 ‘졸다’에서 비롯됐다거나, ‘졸개’에서 나온 이름은 아니다. 장기의 졸은 한자 卒에서 온 말이다.

또 卒은 이후 의미가 넓어져 ‘마치다·죽다’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예를 들어 ‘졸(卒)하다’는 사람이 죽는다는 뜻의 한자어이다. 그래서 현대 한국어에서는 졸이라는 음절이 여러 다른 뜻으로 쓰이지만, 장기의 졸과는 구별해야 한다.

장기는 고대 전쟁의 세계를 보여준다. 장기에서 졸은 보병을 상징한다. 대한장기협회 역시 장기판의 기물을 장군인 ‘장’, 모사인 ‘사’, 전차인 ‘차’, 대포인 ‘포’, 기병인 ‘마’, 전투용 코끼리인 ‘상’, 그리고 보병인 ‘졸’로 설명한다. 장기의 기물 배치 자체가 하나의 군대 편성표인 셈이다.

장기는 본래 전쟁의 진법을 본뜬 놀이이고, 한쪽에 16개의 기물을 두는데 그중 졸은 무려 다섯 개나 된다.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면서도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다. 재미있는 것은 장기판에서 이 ‘졸’이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은 앞으로 한 칸씩 나아가고, 뒤로는 물러설 수 없다. 대신 상대 진영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좌우로도 움직일 수 있다. 이 움직임은 전쟁터의 보병을 떠올리게 한다. 빠르게 전장을 가로지르는 기병도 아니고, 먼 거리에서 공격하는 포도 아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전선을 밀어붙이는 병사다.

그래서 졸의 진짜 의미는 ‘약한 말’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병사가 전쟁의 최전선을 담당한다는 것에 있다. 장기판의 맨 앞줄에는 다섯 개의 졸이 놓인다. 장군을 지키는 최전선이다. 하나하나만 보면 힘이 약하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상대의 진입을 막고 중요한 길목을 차단한다. 장기에서는 졸과 병이 수적으로 많아 초반의 최전선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 장기에서 두 진영의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나라 쪽은 ‘병(兵)’, 초나라 쪽은 ‘졸(卒)’이라고 부른다. 즉 같은 역할의 보병인데도 한쪽은 병사라는 뜻의 ‘병’, 다른 쪽은 말단 군사를 뜻하는 ‘졸’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는 장기판이 단순한 추상적 게임판이 아니라 ‘초한전쟁’이라는 역사적 이미지 위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기에서 두 진영을 한나라와 초나라로 설정한 것도 이런 전쟁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본 코너 1873회 '왜 장기에서는 ‘한(漢)’이라고 부를까', 1874회 '장기에서 왜 ‘초(楚)’라고 부를까' 참조)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졸이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하찮음’은 어디서 왔을까. 한자 卒에는 군대의 말단 병사라는 의미가 있었고, 이와 연결되어 낮은 지위의 사람을 가리키는 용법도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가 ‘졸개’ 같은 말을 들으면 별 볼 일 없는 부하를 떠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장기판에서의 ‘졸’은 단순히 ‘쓸모없는 말’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장기판에서 가장 인간적인 기물은, 가장 위에 있는 ‘장’이 아니라 가장 아래에 있는 졸인지도 모른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