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9(목)

골프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00] 북한 골프에서 왜 '벙커'를 '모래방해물'이라 말할까

2026-02-19 06:37

평양골프장을 홍보하는 북한 잡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평양골프장을 홍보하는 북한 잡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벙커’는 영어 ‘bunker’를 음차한 말이다. 벙커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가지이다. 첫 번째는 배의 석탄 창고를 말한다. 선박용 보일러의 연료로 쓰는 ‘벙커시유(bunker C油)’라는 말은 석탄 창고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두 번째는 골프 코스 중 장애물의 하나로 모래가 들어있는 우묵한 곳이다. 세 번째는 군사용인 엄폐호를 뜻한다.

온라인 영어어원사전(OED)에 따르면 벙커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어로 1758년에 ‘벤치’, ‘좌석’ 또는 짧은 2층 ‘잠자리’를 뜻하는 것에서 유래됐다. 이 단어는 스칸디나비아어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스웨덴 고어에서 ‘번케(bunke)'는 '선박의 화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배'를 의미했다. 19세기에 주택의 석탄 매장이나 배의 갑판 아래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됐다.
벙커라는 말이 골프에서 쓰이게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스코틀랜트 초기 골프역사와 관계가 있다. 골프는 바닷가에 가까운 링크스에서 발달했다. 코스를 가로질러 바다로 이어지는 작은 강이 흐르고 강 주위에 모래가 많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래가 많은 지역을 벙커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모래 벙커는 다른 어떤 스포츠에서도 없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벙커라는 단어 자체의 어원은 16세기 스코틀랜드어 '본카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와 바다 건너 배를 타고 잦은 교류를 한 스칸디나비어의 ‘번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골프에서 벙커라는 단어는 1812년 왕립 골프 규칙에서 처음 등장한다. (본 코너 33회 ‘‘벙커(bunker)'와 '해저드(hazard)'는 어떻게 만들어진 말일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골프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벙커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매일경제신문 1969년 9월30일자 ‘싱글이 되기까지 (13) 韓泓(한홍)씨 골프協(협) 경기위원장’ 기사에서 ‘그의 골프는 ’벙커샷‘과 ’퍼딩‘이 강한 것으로 동호인간에 정평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선 벙커를 ‘모래방해물’이라 말한다. 이 말은 ‘모래’와 ‘방해물’이 합성돼 장소의 성격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듣는 순간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는 설명적이고 기능 중심적인 이름이다.

북한 골프 용어는 대체로 기능 설명형이 많다. ‘티박스’를 ‘타격대’, ‘퍼트’를 ‘마감치기’, ‘클럽하우스’를 ‘봉사건물’로 부르는 식이다. ‘무엇을 하는 가’를 드러내는 이름을 선호한다. 모래방해물도 그 연장선이다. (본 코너 1694회 ‘북한 골프에서 왜 '퍼트'를 '마감치기'라고 말할까’, 1696회 ‘북한 골프에서 왜 ‘티박스’를 ‘타격대’라고 말할까‘, 1697회 ’북한 골프에서 왜 '클럽하우스'를 '봉사건물'이라 말할까‘ 참조)
이 차이는 단순한 번역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언어를 민족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로 본다. 외래어를 줄이고 순화어를 쓰는 정책은 스포츠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같은 스포츠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문화와 체제, 그리고 정체성의 결을 읽게 된다. ‘벙커’는 전통과 국제성을 내포한 단어다. 반면 ‘모래방해물’은 기능과 구조를 드러내는 분석적 명칭이다. 하나는 역사와 관습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와 설명의 언어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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