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4(화)

골프

[김기철의 골프이야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두 번째 샷 — 지나친 고민이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2025-10-13 10:09

어프로치샷 하는 박현경
어프로치샷 하는 박현경
○ 두 번째 샷의 함정

라운드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첫 번째 티샷보다 두 번째 샷에서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난다. 드라이버는 제법 잘 맞았는데 공은 러프 끝자락에 살짝 걸려 있다. 거리도 애매하다. “5번 아이언으로 붙일까, 아니면 6번으로 끊을까?”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분다. 그린 앞 벙커가 눈에 밟힌다. “벙커 앞은 싫고, 그렇다고 짧으면 오르막 어프로치?” 그때 누군가 조언한다. “형, 그냥 감으로 치세요.” 감으로? 이성적 계산의 골퍼에게 그 말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고민 끝에 쳤지만 결과는 벙커 안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왜 그 생각을 했을까”라는 자책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장면은 거의 모든 골퍼의 라운드에서 반복된다. 두 번째 샷 앞에서는 누구나 ‘생각의 함정’에 빠진다.

○ 전전두엽이 과열되는 순간

신경심리학에서 전전두엽은 인간의 ‘판단력’과 ‘자기 통제’를 담당한다. 감정을 다스리고,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고도의 뇌 기능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나친 고민이 쌓이면 전전두엽은 피로해진다. 이를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 상태라 부른다. 한마디로 말해 생각이 많을수록 뇌는 더 둔해진다. 자동화된 스윙 루틴을 기억하는 소뇌와의 연결이 느려지고 감각적 리듬이 깨지면서 스윙 타이밍이 흐트러진다. ‘스윙은 몸이 기억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사실은 ‘뇌가 방해하지 않아야 몸이 기억한다’가 더 정확하다. 즉, 생각이 너무 많으면 뇌가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 두 번째 샷의 인지 전쟁

첫 번째 티샷은 티를 꽂고, 심호흡 한 번, 백스윙, 임팩트, 팔로스로우까지 루틴이 확실하다. 모든 것이 익숙한 절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두 번째 샷은 다르다. 그때부터는 계산, 전략, 심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거리, 바람, 잔디 결, 라이, 경사, 해저드 등 변수가 폭발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부른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의 판단은 정교하지 않고 오히려 감정적이 된다. 전전두엽의 억제력이 떨어지면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번엔 한 번에 붙이자!” 이 욕심이 뇌 속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하며 ‘위험한 자신감’을 만든다. 그 결과는 대개 벙커나 해저드라는 이름의 현실로 돌아온다.

○ ‘과유불급’ —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로 “過猶不及(과유불급)” —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이 짧은 한마디는 골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샷을 망치는 건 부족함이 아니라 과함이다. 프로 선수들은 거리 계산을 빠르게 끝내고 결정 후엔 머리를 ‘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정을 계속 곱씹으면 불안의 중추인 편도체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편도체가 깨어나면 근육이 긴장하고 스윙 리듬이 깨진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한 번 결정했으면, 그다음은 몸에게 맡긴다.” 결국 ‘생각을 줄이는 용기’가 진짜 용기다. 두 번째 샷에서의 신중함은 미덕이 아니라 종종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 생각을 비울 때 뇌는 더 똑똑해진다

신경 영상 연구에 따르면 숙련된 골퍼일수록 스윙 직전 전전두엽의 활동이 오히려 감소한다. 즉, 그들은 생각을 멈춘 것이 아니라 필요한 생각만 남긴 것이다. 전전두엽이 잠시 쉬어갈 때 감각과 운동의 회로가 다시 이어진다. 그때 세로토닌이 감정의 리듬을 안정시키고 균형 잡힌 마음이 스윙의 리듬을 되살린다. 우리가 흔히 “기분이 좋아서 샷이 잘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뇌가 안정돼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골프에서 행복감이란 잘 맞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잘 맞을 준비가 된 뇌가 선물하는 감정이다.

○ 완벽보다 여유를, 계산보다 감각을

골프의 아이러니는 완벽하려는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스윙의 자연스러움을 앗아간다. 첫 번째 샷은 용기, 두 번째 샷은 지혜, 세 번째 샷은 포용이다. 라운드는 실수를 줄이는 여행이지, 완벽을 증명하는 여정이 아니다. 모든 샷을 잘 치려 하기보다 한 번의 결정에 믿음을 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지나친 고민이야말로 진짜 실수의 씨앗이다. 바람이 변하고 마음이 흔들려도 결국 골프는 ‘균형의 예술’이다.

○ 뇌의 속삭임

때로 전전두엽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조금 덜 생각해라. 공은 네가 아니라, 네 뇌가 이미 알고 있다.” 두 번째 샷의 진정한 용기란 결단 이후의 침묵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공은 예상보다 곧고, 더 멀리, 더 부드럽게 날아간다. 생각이 많을수록 공은 더 멀어진다. 골프는 머리로 치는 게임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는 연습이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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