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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68] 북한에선 왜 ‘5·1경기장’이라 말할까

2025-10-08 06:33

1990년 10월 11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다.
1990년 10월 11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다.
평양 대동강 한복판 능라도에 거대하게 솟은 건축물이 있다. 남한 사람들은 보통 ‘능라도 경기장’이라고 부르지만, 북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는 ‘5·1경기장’이라 말한다. ‘5·1’은 5월 1일, 즉 노동절을 뜻한다. 1886년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외치며 일어선 날,
그 역사적 기억을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자의 해방의 날’로 기념해왔다. 북한 역시 5월 1일을 ‘노동계급의 명절’, ‘인민의 날’로 부르며, 국가적 축전의 날로 삼았다.

북한은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비해 5월1일 15만명 수용이 가능한 세계최대규모의 옥외경기장인 ‘5·1경기장’을 준공했다. 이 경기장은 총면적 20만7,000평방미터에 달하며, 인조잔디와 야간경기시설을 갖췄다. 건축물의 지붕은 꽃봉오리와 불꽃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청년의 열정과 사회주의의 활화산’을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1989년 평영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됐고,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장소로도 이용됐다.

필자는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북한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5·1경기장’을 직접 갔던 적이 있었다. 15만석 규모의 경기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관중석 취재에 나섰던 필자는 관중석 분할구역마다 평양의 각 동 이름이 표시된 것을 확인했다.

각 동의 이름이 적힌 관중석에는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관중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15만 명의 엄청난 관중은 자신과 관계된 동이름이 적힌 관중석에 모두 앉았던 것이다. 관중석이 이처럼 동별 위주로 배치되지 않고서는 관중들의 통제가 쉽지 않았던 것일까. 철저한 사회주의체제로 운영되는 북한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강력한 규율과 통제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됐다.
낙하산이 활짝 펼쳐진 모양을 하고 있는 경기장은 특이한 것이 더 있었다. 막대한 경기장 규모에 비해 주차장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경기장 정문 일부 지역을 빼고는 큰 주차장이 눈에 띄지 않았다. 잠실종합운동장의 2배 이상의 관중수용능력을 갖추었지만 주차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었다.
이는 대부분의 관중들이 개인승용차가 아닌 공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차장 시설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게 북한 측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은 북한체제가 낳은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북한에서 ‘5·1경기장’은 단순한 숫자 명칭이 아니다. ‘노동자·인민이 주인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적 공간을 의미하는 정치적 이름이다. 이 경기장에선 체육 행사 뿐 아니라 대집단체조 ‘아리랑’, 백두의 선군조선 등 초대형 공연이 열린다. 정치·문화·군사 행사의 종합무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국가적 축전, 체육경기, 군열병, 예술공연이 모두 열린다.

능라도에 자리 잡은 이유도 상징적이다. 대동강을 따라 흐르는 인민의 물결처럼, 노동의 힘이 사회를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북한에선 ‘5·1경기장’이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인민의 땀으로 세운 나라’라는 자부심이 되새겨진다. 그 안에는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분명하지만, 동시에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는 사회주의적 신념이 자리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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