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3(금)

야구

'시카고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나경민, "후회는 없다"

싱글A 승격 후 샌디에이고 이적, 그리고 방출 통보

2014-08-02 21:50

▲모교덕수고교정에서더나은내일을다짐하는'외야유망주'나경민.사진│김현희기자
▲모교덕수고교정에서더나은내일을다짐하는'외야유망주'나경민.사진│김현희기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전편에서 계속)2009 대통령배 우승과 청룡기 4강의 꿈을 이룬 나경민은 당시 프로 스카우트팀 사이에서도 꽤 화재가 됐던 유망주였다. 당시 신인지명 회의 트렌드가 ‘좋은 투수 모시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 팀에서는 나경민을 1라운드 지명 후보군으로 점찍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평범한 땅볼 타구를 내야 안타로 만들 줄 아는 ‘빠른 발’을 갖추고 있어 ‘한국형 이치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국행은 아무도 모르게, 그야말로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나경민은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라며 섣부른 발표를 경계했다고 한다. 그의 최종 정착지는 시카고 컵스였지만, 시즌 초반부터 애리조나와 오클랜드도 나경민에게 관심을 보이며 적극 공세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 팀은 나경민에게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 ‘입단 합의’에 대한 발표를 먼저 할 경우 나경민 본인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봉황대기 대회를 통하여 시카고 컵스가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내걸며 적극 공세에 나섰고, 결국 그는 그 해에 가장 좋은 조건(추정 계약금 약 72만 5천 달러)을 받은 유망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나경민의 후회 없는 미국 생활, 그리고 방출 통보

그리고 그에 앞서 시카고 컵스행을 결정지은 북일고 김동엽도 나경민과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 루키 리그에서는 룸메이트로 서로 의지하며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첫 해는 늘 그렇듯 ‘적응 기간’이었다. 김동엽이나 나경민 모두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포스트 김태균’으로 불리던 김동엽은 부상으로 루키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며 한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지속해야 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나경민은 “물론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했고, 또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솔직히 자신은 있었다. 그만큼 내가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성도 많아 먼저 팀 동료들에게 녹아들려고 했다. 그래서 영어도 스스로 깨우치면서 원활한 대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며 이듬해부터 싱글-A로 승격한 비결을 밝히기도 했다.

바로 그때, 인터뷰가 진행된 덕수고 야구장 기록실에서는 TV 중계로 시카고 컵스와 LA 다저스의 경기가 진행중이었다. “옛 소속팀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라며 잠시 감회에 젖던 나경민은 컵스가 다저스에 8-2로 승리를 거두자 자신이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오늘(2일) 경기에 출전했던 1번 아리스멘디 알칸타라, 포수 웰링턴 카스티요가 컵스 시절 나와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다.”라며 기쁨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내일의 메이저리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나경민은 돌연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며 다시 한 번 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한때 박찬호가 몸담았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고 나서 솔직히 ‘내가 트레이드 대상이라도 되나?’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샌디에이고는 나를 외야 유망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에도 극동 스카우트를 파견하여 꾸준히 관찰했다고 한다.”라며 샌디에이고 트레이드에 대한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트레이드 이후 ‘더블 A’로 승격되며 샌디에이고 유망주로서 입지를 굳혀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샌디에이고 메이저리그 외야 로스터에는 케머런 메이빈 외에 발 빠르고 방망이 중심에 맞출 수 있는 선수가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일이 터졌다.

▲덕수고야구부기록실에서인터뷰를진행하는동안나경민은미국에서의생활을덤덤하게풀어갔다.사진│김현희기자
▲덕수고야구부기록실에서인터뷰를진행하는동안나경민은미국에서의생활을덤덤하게풀어갔다.사진│김현희기자
“유망주들만 모아서 시행하는 미니 캠프에서 팔꿈치를 다쳤다.”라며 당시를 떠올린 나경민은 “사실 당시에는 방출을 당할지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에 아픈 것을 숨겼다. 그리고 참고 뛰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나오겠는가. 결국, 성적은 성적대로 떨어지고, 경기에 나오는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구단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암담했던 당시 상황을 나경민은 덤덤하게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나경민 본인에게 있었다.

“사실 경기에 잘 나오지 못하면 나는 그 자체에 화를 내는 편이다. 국내에서도 경기에 못 나갈 때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더 이를 악 물었다. 그런데 대주자/대수비/대타로만 등장하다 보니 자꾸 출장 시간이 줄어들고, 그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경기 출장을 못 해도 전혀 화가 안 나더라.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절로 화가 났다.” 승부사로 이름난 나경민의 심정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에서 나오기 싫은 날도 많았다고 한다. 컵스 시절처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것도 싫어했다.

결국, 나경민은 스스로 모든 짐을 짊어진 채 ‘내키지 않은’ 한 시즌을 소화했다. 이렇게 좁아진 나경민의 입지는 2013년 3월, 샌디에이고가 그에게 방출 통보를 하면서 최종 마무리됐다. 불확실해진 자신의 진로로 인하여 고민에 빠진 나경민은 ‘트라이아웃(마이너리그 선수 공개 선발)을 통하여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귀국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 마지막 편, ‘내년 신인지명 회의를 노리는 나경민’에서 계속 -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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