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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85] 배구에서 리베로(Libero)가 주장(Captain)을 맡지 못하는 이유

2021-09-04 05:43

배구에서 수비전문 리베로는 경기 중 주장을 맡을 수 없다.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김연경(가운데) 등이 3세트를 따낸 후 환호하고 있는 가운데 리베로 오지영(오른쪽)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도코=연합뉴스 자료사진]
배구에서 수비전문 리베로는 경기 중 주장을 맡을 수 없다.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김연경(가운데) 등이 3세트를 따낸 후 환호하고 있는 가운데 리베로 오지영(오른쪽)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도코=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제배구연맹(FIVB) 공식 규정 제2장 선수편 4.1.2는 ‘팀 주장(Captain)은 공식 라인업(Line Up)에 올린 선수 중 리베로(Libero)를 제외한 다른 선수가 맡아야 한다’고 돼 있다. 리베로는 공식적으로 주장을 맡을 수 없다는 규정이다. 리베로 2명을 포함 최대 14명까지 한 팀에 선수 명단을 올릴 수 있는 라인업에서 주장으로 리베로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이다.

주장의 역할은 필요할 때 심판에게 항의하는 등 팀 대표를 맡는다. 주장(主將)은 원래 영어 ‘Captain’을 한자어로 번역할 말이다. ‘임금 주(主)’와 ‘장수 장(將)’의 합성어인 주장은 군에서 우두머리이거나 운동경기에서 팀을 통솔하는 선수를 뜻한다. 우리 말 주장은 한자어 음역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영어 ‘Captain’은 원래 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을 나타낸 명칭이었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서양언어의 뿌리인 라틴어 ‘Capitanus’에서 유래해 ‘Caput’로 변환됐다가 영어에서 차용했다. 군대 용어로 대장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은 1560년대부터였으며, 해군에서 함대 지휘관을 뜻하는 명칭으로 널리 사용했다. 1823년부터는 스포츠 용어로 한 팀의 리더라는 명칭이 됐다.

배구에서 리베로가 생긴 것은 1997년 월드리그부터였다. 자유로운 공격수라는 이탈리아어 ‘Battitore Libero’의 약자인 리베로는 오로지 수비전문선수로 수비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포지션이다. (본 코너 471회 ‘왜 리베로(Libero)라고 말할까’ 참조) 자유롭게 교체되는 ‘제7의 선수’인 리베로는 특성상 코트에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리베로는 보통 미들블로커(센터)가 후위로 넘어올 때 교체해 들어간다. 코트 안에 항상 들어가 있는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리베로에게 6명을 대표한 주장을 맡기가 어렵다. 실제 팀내에서 리베로가 주장일 경우라도 경기 중 주장 역할은 다른 선수가 맡아야 하는 이유이다.

원칙적으로 리베로는 주장을 맡을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코트 위에서도 제한된 플레이만 해야 한다. 후위에서 수비만 전념해야하며 서브나 블로킹, 공격 등을 할 수 없다. 만약 리베로가 후위에서 전위로 넘어가 블로킹이나 공격 등을 하면 규정 위반으로 처리해 상대방에게 점수를 허용한다. 만약 리베로가 전위에서 볼을 띄워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오버핸드가 아닌 언더핸드로만 해야 한다. 오버핸드는 공격적인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본 코너 475회 ‘배구에서 ‘언더핸드(Underhand)’라는 말을 왜 쓸까‘, 476회 ’왜 오버핸드(Overhand)라고 말할까‘ 참조) 다만 후위에선 언더핸드나 오버핸드 리비스 및 세트가 다 가능하다.

대개 리베로는 팀내에서 최고참으로 주장을 맡는 경우가 많다. 출산으로 코트를 떠났다가 최근 김연경과 이다영, 재영 쌍둥이 자매가 빠져 전력이 약화된 여자팀 흥국생명으로 다시 복귀한 리베로 김해란(37)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은퇴 이전 김해란은 팀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주장을 맡았는데 리베로로 들락날락하면 김연경 등이 일시적으로 코트에서 주장을 맡았다. 대표팀 에이스로 한일전에서 공격이 미스가 나며 자신의 입에서 스스로 욕설을 내뱉는 듯한 입모양을 해 ‘식빵 언니’라는 별명이 붙은 김연경은 흥국생명을 떠나기 전인 올해 초까지 김해란이 코트에서 주장을 하지 못할 경우 팀을 대표해 판정 등에 문제가 있을 때 이의 제기를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2020도쿄올림픽에서 리베로로 활약했던 오지영(33)은 현재는 GS 칼텍스에서 뛰고 있지만 올 초까지 전소속팀인 담배인삼공사에 있을 때 원래 팀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경기 중에는 리베로의 특성상 팀 주장을 한송이(37)가 맡아 대신 역할을 하기도 했다.

FIVB 규정에는 경기 직전 제출하는 공식출전선수 명단에 팀 주장으로 사인된 경우는 경기 중에는 바꿀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만약 주장으로 등록된 선수가 불의의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할 경우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다른 선수가 주장을 맡는 것을 예외적 규정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같은 조항에도 불구하고 리베로는 주장을 맡을 수 없도록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는 경기에 집중한다는 원칙과 철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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