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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72] 왜 디그(Dig)를 리셉션(Reception)과 구분해 말할까

2021-08-22 07:37

'배구 여제' 김연경이 상대 공격을 막기위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배구 여제' 김연경이 상대 공격을 막기위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배구에서 공격의 출발은 서브 리시브에서 시작한다. 서브 리시브는 상대 공격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리셉션(Reception)이라고 말한다. 서브를 접수한다는 뜻이다. 국내 배구서는 리셉션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국제배구에서는 표준 용어이다. (본 코너 456회 ‘왜 일본식 영어 ‘리시브(Receive)'를 영어 '범프(Bump)' 대신 사용하게 된 것일까’ 참조)

디그(Dig)는 리셉션이라는 용어를 알면 확실히 이해하기가 쉽다. 볼 처리 방법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디그는 쉽게 말해서 서브 리시브로 말하는 리셉션 이외의 리시브라고 보면 된다. 서브 리시브를 뺀 모든 리시브가 디그인 것이다. 그동안 국내배구에서 디그와 서브 리시브를 혼동한 것은 두 단어를 리시브로 총칭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스파이크와 페인트 등 서브를 제외한 공격을 받아내는 것을 디그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디그라는 말은 중세 영어 ‘Diggen’이 어원으로 ‘땅을 파다’라는 의미이다. 인터넷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13세기 동사형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1797년 명사형으로 ‘땅 파는 사람’ , ‘땅 파는 도구’ 등의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 야구 초창기 시절부터 디그라는 말을 썼다. 폴 딕슨의 ‘딕슨 야구사전’에 의하면 디그는 1901년 배트로 맞은 볼을 잡는 것을 말한다. 특히 흙 속에서 튀는 잡기 어려운 공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경우에 디그라는 말을 사용했다. 디그는 야구 용어로 열심히 경기를 한다는 의미로도 썼다. 예를들어 체구가 큰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전력질주해 1루 세이프에 성공할 때, ‘Dig Down’이라고 1918년 미국 보스턴 아메리칸지가 보도했다. 아래로 잘 파고 들었다는 의미로 세이프에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커브볼의 변화를 말할 때도 디그라는 말을 명사형으로 쓴다. 미국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한 고산지대 덴버에선 공기가 지대가 낮은 다른 지역보다 부족해 커브볼이 잘 안드는데, 이런 상황에 디그라는 용어를 붙여 말한다.

배구에서 디그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보통 서브보다는 잡기 어려운 상대의 스파이크 공격을 처리할 때를 구별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디그는 정상적인 서브 리시브보다 자세를 낮게 잡고 처리해야 한다. 이런 볼을 처리하는 수비 선수 자세가 마치 구멍을 파는 동작을 닮은 것처럼 보여서 이 말을 쓰게 됐다는 설이 알려져 있다.

대개 디그는 수비전문 리베로(Libero)가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본 코너 471회 ‘왜 리베로(Libero)라고 말할까’ 참조) 리베로가 수비에서 상대 공격을 리시브로 처리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대개 수비수는 양손으로 상대 공격을 막는다. 하지만 양손으로 처리할 시간이 없을 경우 다이빙을 해서 한 팔이나 주먹으로 간단히 볼을 올려야 할 때도 있다. 팔을 뻗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등으로 다이빙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급하면 발로 볼을 걷어 올린기도 한다. 예전에는 발로 처리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발 배구’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작은 수비 능력이 뛰어난 리베로가 대개 맡는다.

국제대회 공식 기록에선 디그를 수비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구분해 개인과 팀 랭킹 순위를 매긴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4강에 오른 한국은 디그에서 리베로 오지영과 ‘배구 여제’ 김현경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해 뛰어난 수비력을 입증해 보였다. 디그 기록은 수비수가 상대 공격에서 공을 받은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디그를 잘하기 위해서는 순발력과 유연성, 상대 공격을 예측하는 수비센스 등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많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키워야 한다. 기본적인 언더핸드와 오버헨드 리시브 자세로부터 출발해 다이빙 캐치 등 밀도높은 개인 운동과 팀훈련을 상시적으로 실시해야한다.

세계적인 수비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오는 공격을 온 몸을 날려 처리하는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코트 바닥에 거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볼을 걷어내서 살려내 오히려 공격의 반전기회로 만드는 모습은 배구의 흥미를 더욱 이끌어 낸다. 국제배구가 디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그를 리시브에서 분리해 쓴 것은 세계 배구의 기술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배드민턴과 비슷하다고 해서 초창기 ‘민토네트((Mintonette)’라고 불리기도 했던 발리볼, 배구는 시대가 흐르면서 강도가 높아지고 더 정교한 경기를 펼치면서 용어의 전문화, 세분화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배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배구는 일본처럼 한동안 리시브라는 명칭으로 통칭해 사용하다가 리시브를 서브리시브, 표준 국제어로는 리셉션과 디그로 구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이후부터였다. 그만큼 국제화에 늦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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